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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사내초교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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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 기자

화천에 근대교육이 본격화된 것은 3·1운동이 조선 교육정책의 전환점이 되면서부터다. 1922년 일제가 제2차 개정교육령을 시행, 학교교육의 질과 양이 확대됐다. 이로 인해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순수 조선인의 힘으로 세운 광동학교를 비롯해 산양초교, 사내초교, 풍산초교, 원천초교, 논미초교, 상승초교 등 7개 초등학교가 차례로 신설됐다. 화천에 이처럼 많은 학교가 단기간에 설립된 것은 당시 교육에 대한 지역민의 높은 열망을 보여준다. ▼사내초교는 1925년 3월5일 사내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동년 4월1일 개교됐다. 광덕산 자락, 복주산 골짜기, 화악산의 능선을 따라 마을에 처음 들어선 교정은 흙먼지 속에서도 희망을 움 틔웠다. 그 시절 시골 골짜기에서 들려오던 종소리는 삶의 리듬이었고, 아이들의 책가방은 마을의 내일이었으며, 나무 책상 위에 놓인 공책은 지역의 미래였다. 이후 8·15광복과 더불어 공산 치하에 예속됐다가 6·25전쟁 때 수복돼 오늘에 이르렀다.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사내초교는 지역 인재의 요람이자 마을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시대 변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온 사내초교의 존재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선 ‘지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절벽, 교육 인프라의 공동화, 도시집중 현상 속에서 지역이 학교를 지켰고, 학교는 지역을 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학교가 곧 마을’이라는 믿음 때문이며 그 뒤엔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애정과 헌신이 있었다. ▼‘100년 희망, 1000년 미래’란 슬로건이 사내초교 교정에 새겨졌다. 산골 학교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비전이 함께 담겼다. 오는 27일 기념행사는 과거의 찬란한 복원이라기보다 미래로의 제안이다. 동문이 만든 기념 조형물, 동문 화백의 그림, 아이들의 글씨로 채운 전시회는 단지 추억의 나열이 아니다. 세대가 어우러지고, 마을이 다시 학교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작은 학교 하나가 보여준 연대의 기억은 강원교육이 놓쳐선 안 될 값진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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