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K컬처, ‘케데헌’이 강원도에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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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기 편집·문화교육담당 부국장

- 한류의 환상 뒤에 남은 것, 문화 주권의 길을 다시 묻는다

한류의 세계관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애니메이션 ‘K-POP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그 신호탄과도 같다. 무대 위 아이돌이 동시에 악령을 사냥하는 전사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 뒤에 숨어 있던 한국 대중문화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끌어올린다. 팬덤의 열기, 글로벌 경쟁, 끝없는 소비 속에서 만들어진 K컬처의 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전 세계 관객이 ‘귀엽고 밝은 한국’만을 기대할 때, 이 작품은 그 이면의 피로와 불안을 서사로 만든다. 즉, 세계가 사랑한 K팝의 신화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진짜 한국 문화의 얼굴’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 작품의 흥행은 단순한 콘텐츠 성공을 넘어, 한류가 자기서사(self-narrative)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K-컬처는 외부의 시선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공급하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케데헌’은 그 시선을 되돌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문화는 더 이상 ‘세계가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는 ‘주체’로 변화한다. 하지만 이 자기 성찰의 이면에는 역설이 있다. 한국 창작자의 이야기를 담은 ‘케데헌’의 제작 자본은 외국 기업이 주도하고, 플랫폼은 글로벌 OTT가 장악하고 있다. 창작의 주체는 한국이지만, 이윤의 흐름은 국경 밖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적 모순이 반복된다.

이제 K컬처는 산업적 성공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세계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며 ‘소비되는 문화’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창조의 문명’으로 진화할 것인지 말이다. 그 답은 서울 중심의 제작 구조를 벗어나, 지역과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는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준 곳이다. K드라마와 영화, 뮤직비디오가 남긴 강원도의 풍광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였다. ‘도깨비’의 주문진 방파제, BTS의 버스정류장, ‘사랑의 불시착’의 영월 별마로천문대는 세계 팬들에게 ‘현실 속 판타지’를 체험하게 한 장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현장을 ‘관광 코스’로만 소비해왔다. ‘한류의 성지’라는 이름이 남긴 것은 한때의 붐이었지, 문화적 뿌리는 아니었다.

강원도의 산과 바다는 여전히 이야기의 원천이다. 문학과 예술, 음식과 사람, 그리고 자연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곳. 이곳에서야말로 K-컬처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한류 2.0’의 핵심은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 지역의 감성과 창작자의 삶이다. 강원도의 작은 예술촌과 청년 스튜디오, 독립 음악가들의 실험이 그 뿌리가 된다면, K컬처는 비로소 산업을 넘어 문화가 된다. 세계가 감탄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케데헌’이 보여준 이야기의 힘은 바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현실의 피로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태도, 그리고 자기 세계를 잃지 않으려는 저항,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문화가 다시 찾아야 할 본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수출’이 아니라 ‘순환’을 생각해야 한다. 창작자가 지역에서 머물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스튜디오와 공동제작 시스템, 체류형 예술 공간이 필요하다. 한류의 지속 가능성은 정책의 화려함이 아니라, 창작자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다. 서울이 아닌 춘천, 평창, 속초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들이 모여야 진짜 문화강국이 된다. 그것이 한류가 일회성 ‘상품’을 넘어, 세계 속 ‘문명’으로 자리 잡는 길이다.

‘케데헌’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한국의 문화는 더 이상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다. K컬처가 진정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려면, 한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강원도의 숲과 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계의 언어가 될 때, 한류는 완성된다. 이제 환상의 불빛을 걷어내고, 그 빛의 근원을 돌아볼 때다. ‘케데헌’이 보여준 것은 단지 싸움의 서사가 아니라, 자신을 지켜내는 문화의 투쟁이었다. K컬처의 다음 무대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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