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화의 어두운 지하를 묵묵히 지탱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석탄광에서 일했던 광부들이다. 땅속 수백m 아래, 빛 한 줄기 없는 갱도 속에서 생명을 담보로 석탄을 캤던 이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이들의 헌신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법정 기념일 ‘광부의 날’을 제정하려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의힘 이철규 국회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매년 6월29일을 ‘광부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6월29일은 광업법이 제정·공포된 뜻깊은 날이자, 산업화의 발판을 놓은 광산업의 상징적인 시작점이다. 특히 올 6월 삼척 도계광업소의 조기 폐광으로 국내 마지막 국영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우리나라 석탄산업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제는 그 역사를 되짚고, 그 중심에 있던 광부들의 삶과 노고를 국가가 기억해야 할 때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 태백, 삼척 등은 한때 석탄산업으로 대한민국 에너지 수급을 책임졌던 지역이다. 이곳에서 광부들은 신념과 사명감으로 갱도에 들어가 하루 12시간 이상씩 작업을 했고, 매년 수십명씩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헌신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국가를 위한 희생이었다. 이 같은 지역의 역사와 현실을 외면한 채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석탄산업을 밀어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희생이 미래 세대에게도 의미 있게 전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억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광부의 날’은 단순한 추모의 날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한 축이었던 노동의 가치, 위험을 감수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던 서민 영웅들을 재조명하는 날이다. 더 나아가 에너지 전환 시기에 폐광 지역 주민들의 상실감을 위로하고, 자긍심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지역 소외와 공동화를 극복하기 위한 상징적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국가는 광산업의 역사를 단절의 역사로 남겨서는 안 된다. 폐광 지역과 그 주민들은 산업화의 파트너였다.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우 없이 균형발전이나 정의로운 전환을 논하는 것은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정부는 ‘광부의 날’ 제정을 계기로 광업 유산 보존, 산업전사에 대한 사회적 보상, 폐광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 수립까지 포괄하는 정책적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