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하늘에서 오지만, 고통은 땅 위에서 나뉜다.”
강원은 더 이상 재난의 변방이 아니다. 대형 산불과 기록적인 폭설, 예측 불가능한 폭우와 가뭄은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그 피해와 부담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균형의 최전선에는 늘 여성들이 서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붕괴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돌봄의 질서’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노부모의 안부를 살피며, 장애가 있는 가족의 안전을 챙기는 일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동이다. 그러나 그 노동이 멈추는 순간 일상은 무너진다. 대피소에서도 누군가는 밥을 짓고, 아이를 달래고, 불안에 떠는 가족 곁을 지킨다. 이 역할은 관행처럼 여성의 몫이 되어 왔다. 유구무언(有口無言), 말하지 않았을 뿐 사라진 적은 없었다.
강원도의 지역적 특수성은 이 문제를 더욱 깊게 만든다. 산간과 농촌, 어촌이 많은 강원에서는 재난 발생 시 이동 자체가 쉽지 않고, 의료와 돌봄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 폭설로 길이 끊기면 아이와 노인은 집에 고립되고, 산불이 나면 생계와 돌봄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이가 바로 여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재난 대응 정책은 여전히 시설 복구와 물리적 안전에 머물러 있다.
사람의 삶, 특히 돌봄의 현실은 정책의 중심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다.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위험이다.
이제 강원형 재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재난안전은 구조와 복구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일상이 회복되는 전 과정이어야 한다. 대피소에 수유 공간과 아동 친화 공간은 마련돼 있는지, 재난 시 돌봄 공백을 메울 인력과 시스템은 준비돼 있는지, 고립 위험이 큰 1인 여성노인 가구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 재난정책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점검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재난 이후가 아니라 재난 이전의 돌봄을 준비해야 한다. 평시 지역 공동체 안에서 돌봄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하고, 마을 단위에서 위기 대응 역량을 키우는 일은 가장 비용 대비 효과적인 재난정책이다. 작은 관심과 연결이 큰 피해를 막는다는 사실은 수많은 재난의 경험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를 정책으로 실천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정책 설계 단계부터 반영해야 한다. 재난 대응 매뉴얼에 성별 영향 평가를 도입하고, 지역 단위 재난 대응 체계에 여성 참여를 제도화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는 결코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돌봄이 작동해야 지역이 버티고, 지역이 버텨야 강원이 지속된다. 상생공존(相生共存)의 길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더 큰 자율과 권한을 가진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도 함께 지고 있다.‘특별’이라는 이름이 행정 명칭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기후위기 시대, 재난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일상을 지켜내는 정책, 그 출발점은 돌봄이며 그 중심에는 여성의 삶이 있다.
재난은 자연현상이지만, 피해의 크기는 사회가 결정한다. 이제 강원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대응을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돌봄의 관점으로 재난정책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인가.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안전을, 그리고 강원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