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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전쟁보다 더 깊은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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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 기자

새해부터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가 뒤집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생포’했다고 선언했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전면전을 선포하며 미국을 강력히 규탄했다. 바다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전면 침공을 택한 이 전쟁의 명분은 마약과의 전쟁. 그러나 뒷배경에는 석유와 체제, 그리고 권력을 둘러싼 지정학적 ‘약탈’이 숨어 있다. 분쟁으로 얼룩진 2025년은 지났지만, 2026년에도 총성은 계속된다. 태국과 캄보디아, 콩고와 르완다, 시리아와 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까지... 세계는 지금 ‘전쟁의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다. 휴전은 있었지만 평화는 없었다. 협정은 서명됐지만 이행은 없다.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 물과 불은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화합하지 않거나 화합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한다. 태국과 캄보디아, 콩고와 르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가 그러하다. 2년여에 걸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수만명이 사망하는 등 지역 분쟁을 넘어 인권, 생태, 젠더 정의가 동시에 무너진 복합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난민 규모는 8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총성을 잠시 멈춘 것일 뿐, 갈등은 잠복했고 더 깊어졌다. ▼전쟁은 총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UN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활동을 중단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유엔의 면책특권을 박탈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도 무시됐고, 유엔 헌장도 찢겼다. 이제 더는 불가침이 작동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과 빵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습뿐이다. ▼유엔을 지지하던 국가들조차 이제는 외면하거나 침묵한다. 연대는 퇴화했고, 구호는 마케팅 언어로 포장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연대란 말마저 공허하다. 인류는 지금 전쟁보다 더 깊은 무기력에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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