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상징이었던 삼척 도계의 옛 미곡창고(도계석탄공사아트홀)에서 오는 31일까지 박진화 화백(전 (사)민족미술인협회 회장)의 기획초대전이 열린다. ‘길 틈’을 타이틀로 한 이번 전시는 단순한 볼거리 제공을 넘어, 40여 년간 현실주의 미술을 이끌어온 박 화백의 심원한 작품 세계와 철학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자리다.
박 화백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공동체 의식’과 ‘예술의 실천적 작용’이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그는 “나는 나만이 아니다”라는 태생적인 자각을 바탕으로, 예술이 우월주의에 빠져 인간의 삶을 소외시키는 것을 철저히 경계해 왔다. 그에게 그림이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인 명사(名詞)가 아니라, 그린 이의 인격과 생명력을 담고 세상의 아픔에 함께 관여하는 동사(動詞)로서 실천되어야 하는 존재다.
특히 그의 작품 시야는 단순히 지상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는데 머물지 않고, ‘지하부터 하늘’까지 수직적으로 깊게 뻗어 있다. 인간이 진정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지상의 밝음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토대가 되어준 과거의 어두움과 지하 막장에 깃든 고통의 층위까지 함께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굳건한 예술적 신념이다.
이러한 철학은 이번 전시에 출품된 35점의 대형 근작들에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전시장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는 1,000호 크기의 압도적인 대작 ‘밤’과 ‘낮’, 그리고 12지신을 모티브로 한 12점의 ‘호명’ 연작은 작가 내면의 양면적 의식과 심미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역사적 반성과 통찰을 담은 작품들도 깊은 울림을 준다. 동학사상에 기반해 인간과 사회 전체를 사색하는 ‘영소’, ‘우음’, ‘들사람 초상’ 연작은 시대의 아픔과 잊힌 사람들의 사연을 직시하는 작가의 치열한 성찰을 담아냈다. 반면 ‘폭포’, ‘응수월행’, ‘나무에’, ‘산으로’ 연작은 웅장한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와 생명력을 캔버스 위에 수려하고 역동적인 색채로 풀어낸다.
박 화백은 오늘날 화가의 소명이 대중을 앞장서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외되고 뒤처진 곳에서 묵묵히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떠받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폐광 지역 도계의 낡은 폐창고에 자리 잡은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지역 주민과 과거 광부들의 상처를 보듬고 지켜주는 거대한 ‘부적’처럼 작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