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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칼럼]피보다 진한 책임: 가족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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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욱 춘천지방법원 판사

◇김민욱 춘천지방법원 판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2018)은 기묘하게 따뜻한 범죄의 현장으로 막을 올린다.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와 소년 쇼타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정겹고 훈훈하다. 이들의 허름한 집에는 오사무와 사실혼 관계인 노부요, 학대받던 소녀 유리, 그리고 죽은 남편의 연금으로 생계를 지탱하는 노파가 모여 산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남남이다. 하지만 좁은 방에 부대껴 앉아 온기를 나누고 서로의 추위를 기꺼이 덮어주는 이들 앞에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새삼 낯설어진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우연히 맺어진 맹목적인 혈연인가, 아니면 기꺼이 함께 버텨낸 시간과 돌봄의 산물인가.

상속 사건을 다루며 가족의 해체와 파탄을 마주하다 보면, 이 질문은 유독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동안 법은 이 실존적인 질문 앞에 다소 무심하고 기계적인 답변만을 되풀이해 왔다. 2019년에도 그랬다.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딸을 등진 채 사라졌던 생모가 20여 년 만에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했을 때, 당시의 법은 매정한 모정을 꾸짖는 대신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손을 들어주어야 했다. 공분이 들끓었고, 남겨진 이들은 눈물로 입법을 호소했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이에 응답했습니다. 이른바 ‘구하라법’이라고 불리는 ‘상속권 상실 제도’가 지난 2024년 8월 국회의 문턱을 넘었고, 2026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과거의 상속결격 제도(민법 제1004조)가 살인이나 유언서 위조 같은 형사적 사유에 국한되었다면, 새로 도입된 상속권 상실 제도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권리와 의무를 법원이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이렇다.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행위 또는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부모의 상속권을 법원이 박탈할 수 있게 되었다(민법 제1004조의2 제3항). 최근에는 상속권 상실 대상의 범위를 직계존속인 부모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 등 모든 상속인으로 확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본질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이나 ‘심히 부당한 대우’라는 요건은 개별 사건에서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는 원인이 된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및 그 밖 사정 등을 고려하여 판단될 것이다(민법 제1004조의2 제5항).

다시 영화 <어느 가족>의 씁쓸한 후반부로 돌아간다. 공권력의 개입으로 이 ‘유사’ 가족은 산산조각난다. 노부요는 감옥으로, 쇼타는 보육시설로, 학대받던 유리는 다시 지옥 같은 친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법적으로 남남이었기에 정해진 수순이었을까. 허나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알았을 것이다. 과연 누가 진짜 가족이었는지. 상속권 상실 제도는 그 반대 방향에서 같은 진실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피를 나눴다는 사실 하나로 주어졌던 권리에 법이 비로소 구체적인 ‘조건’을 달았다. 그 조건은 다름 아닌 가족으로서의 ‘책임’이다.

이제 법은 우리에게 묻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옳은 질문이다. “당신은, 정말로 가족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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