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홍섭의 바다 편지]소돌과 향호, 배호와 BTS    

◇이홍섭 시인

바야흐로 ‘노래의 시대’ ‘가수의 시대’입니다. 아무리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지만, 지금처럼 노래와 가수가 시대를 압도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며칠 전 열린 BTS의 광화문 컴백 공연은 이를 여실히 입증해주었습니다.

노래와 가수의 시대를 끌고 가는 쌍두마차는 ‘트로트’와 ‘K팝’입니다. 하루종일 뉴스 채널을 틀어놓던 어르신들은 이제 하루종일 트로트가 나오는 채널을 쫓아갑니다. K팝은 ‘골든’의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과 완전체가 된 BTS의 컴백 공연으로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K팝이 이끄는 K문화의 가공할 확산력은 각종 통계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수가 전 세계 박물관 중 4위를 차지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다음 순위라는 게 참으로 놀랍고 뿌듯합니다.

BTS의 컴백 공연 며칠 뒤, 저는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소돌해변과 향호해변을 찾았습니다. 소돌해변은 아들바위를 비롯한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로, 향호해변은 최근 지방 정원으로 지정된 호수, 향호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주문진해수욕장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자리 잡은 이 작은 해변들이 근래에 주목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노래와 가수 때문입니다. 소돌해변에는 배호의 노래 ‘파도’를 새긴 비가, 향호해변에는 BTS의 앨범 재킷이 촬영된 버스정류장이 서 있습니다. 배호의 노래는 트로트 열풍을 타고 다시 번지고 있으며, BTS의 노래는 전 세계를 향해 다시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소돌해변에 조성된 배호의 노래비는 좀 특이합니다. 보통 가수, 작사가, 작곡가와 인연이 있거나, 제목이나 노랫말에 구체적인 장소가 들어간 인연으로 노래비가 세워지는 것에 비해, 이곳의 비는 오로지 단 하나, ‘파도’와의 관련성만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비 뒷면에 새겨진 ‘건립 경위’는 이를 두고 “자연이 빚어낸 기암괴석과 그곳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어서 “대중의 가슴 깊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 배호의 노래 ‘파도’를 접목하여 자연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노래비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의 마지막에 ‘2003. 7 강릉시장’이라고 쓰여 있는 데 시장의 실명이 첨부되지 않은 점도 특이합니다. 한편으로는 뜬금없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배호의 노래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배호는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불세출의 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가 이승을 떠난 지 십 년 뒤인 1981년, 한 방송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하는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 조사에서 배호가 1위에 등극했습니다. 식지 않는 추모 열기와 근래의 트로트 열풍을 고려하면, 소돌해변에 뜬금없이 배호의 노래비를 세운 분들은 어찌 보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향호해변의 ‘BTS 버스정류장’은 BTS의 앨범 재킷 촬영을 위해 임시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포토존으로 다시 살아나 BTS 팬인 ‘아미’들은 물론 일반 관광객들의 순례 코스가 되었습니다. 이 정류장은 한 조사에서,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 아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 1위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보니 정류장 앞 인도와 해변 솔숲 의자들이 모두 BTS의 상징인 보라색으로 단장되어 있었습니다. BTS에게서는 비틀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보여준 순수함과 맑은 화사함이 느껴집니다. 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돌해변에서 향호해변까지, 배호에서 BTS까지 걷는 길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이 시대를 끌고 가는 노래 및 가수의 힘과 역할, 그리고 그 시대적 의미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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