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관람객이 1,600만명을 넘는 등 공전의 히트를 하고 있다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대중 인문서를 써오면서 수차례에 걸쳐 단종의 유배 이야기와 영월 호장(아전 우두머리)인 엄흥도의 행적를 다루었고, 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해 그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곤 했던 터라 이번 영화에서는 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꽤나 궁금하던 차였다.
필자가 영화를 보는 내내 특히 주목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처한 단종을 살피고 대하는 엄흥도의 마음 씀이었고, 그럴 때마다 그간 집필해 온 책 속에 포함된 ‘강원도인의 전통적 기질’ 부분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다음은 그 주요 내용들이다.
기록상으로 강원도 사람들의 기질과 심성을 처음 시사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에 실린 유명한 향가 ‘헌화가’일 듯싶다. 이는 널리 알려진 대로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던 어느 봄날, 동행하던 수로부인이 높다란 벼랑 위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의 아름다움에 반해 누가 좀 꺾어줄 것을 간청했으나, 모두들 몸을 사리던 중 때마침 바닷길을 지나던 어느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다 바치면서도 부끄러워했다”는 사연으로, 당시 강원도 사람들의 자기희생과 겸양하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조선에 들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과 이야기는 줄을 잇는다. 새 왕조를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태조 이성계가 조선 8도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하문하자 건국 설계자인 삼봉 정도전은 각 지역에 대해 일일이 돌아가며 네 글자로 압축해 답하는데, 이 중 강원도의 경우는 ‘암하노불(巖下老佛)’, 즉 “바위 아래 앉은 늙은 부처”라고 명명한다. 부처님의 본래 자리는 따뜻하고 안전한 법당이거늘 이를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차디찬 바위 밑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며 그 백성들의 이타심과 희생정신을 강조하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복거총론 인심편) 또한 강원도의 지리적 특성에 빗대어 평가하고 있을 뿐, 유사한 맥락이다. 즉, ‘강원도즉협맹다준(江原道則峽氓多蠢)’, “강원도 사람들은 산골 백성들이라 영악하지 못하나 심성이 곧고 우직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엄흥도는 조선의 27대 임금 중 가장 비운의 삶을 마감한 단종이 오늘에 이르도록 영월의 ‘장릉(莊陵)’에 영면할 수 있도록 살신성인한 주인공으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무려 22차례나 실려 있음에도, 이번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일반인들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이었다. 이제 그가 생을 마감한 지 550여년이 지나 국민 대다수에게 ‘충절의 화신’으로 부활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영월엄씨를 명가(名家)로 부상시키고 있는 데다, 강원도 사람들의 전통적 기질과 품성을 재확인하고, 비교적 외진 고장으로만 인식되어 오던 영월에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계기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바른 일을 하다가 화를 입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爲善被禍 吾所甘心)” 단종이 절명한 후 ‘사체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엄명 속에서도 시신을 수습하며 엄흥도가 남겼다는 짧은 외침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