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학산의 양갓집 규수가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다. 바가지에 물을 뜨니 해가 담겼다. 처녀는 그 물을 마시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중략) 후에 당(唐)나라에 수학하여 범일국사라는 고승이 되었고, 죽은 뒤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이 되었다” 황루시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는 한국민속대백과 사전에서 범일국사의 탄생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범일국사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강릉단오제의 주신이다. ▼범일국사가 태어난 ‘학산’은 오늘날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를 일컫는다. 마을 뒷산에 학바위가 있어 학산리라고 불린다. ‘살아서는 학산이 좋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전통과 문화, 역사를 담은 마을이다. 단오제 주신이 난 곳이라서인지 걸출한 인물도 많다. 우리나라 현대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학자와 정치인, 기업인들을 배출했다. ▼학산리 사람들은 고향사랑도 각별하다. 각박한 서울생활의 고단함을 묵묵히 견디며 가슴 한 켠엔 늘 나고 자란 마을을 간직했다. 이들이 하나 둘 모여 1977년 서울학산회가 출범했다. ‘학마을’도 그렇게 탄생했다. 학산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곳을 떠난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마을의 소식지다. 정해진 형식은 없다. 어떤 이는 편지를 쓰고, 어떤 이는 마당에 피었던 봄꽃을 추억한다. 1년에 두 번, 때로는 한 번, 잊혀질때즈음 ‘학마을’을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그렇게 모인 시간이 어느덧 50년이다. 창간호는 200부에 4쪽 분량이았지만 이젠 1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자 1,400권이 학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지역소멸’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작은 마을의 소식지가 반세기를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다. 마을은 단순히 삶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을 잇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터전이 됐다. 이 곳에서 피어난 따뜻한 마음과 걱정, 응원, 위로가 마을을 지속하게 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고향의 힘’일지도 모른다. 서울=원선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