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팔도건축기행]긴담모퉁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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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담모퉁이집 1층 필사의방과 2층 다다미방. /김성호 기자 ksh96@kyeongin.com

인천 답동성당 뒷길에서 내리막을 따라 100m 쯤 걷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 모퉁이에 연회색 2층 목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 부지 모퉁이 양옆으로 도로와 인접해 있어 ‘긴담모퉁이집’으로 불리는 신흥동 옛 시장관사(유산명: 신흥동 구 인천시장 관사)다. 1938년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으로, 해방 이후 한때 인천시장 관사로 쓰이다 한 가족의 보금자리가 됐고, 지금은 인천시가 매입·개방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으로 변모했다. 2023년 12월 인천시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다.

■해방 이후 인천시장이 머물던 곳=인천시는 등록문화유산 지정에 앞서 지난 2021년 건물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완료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보고서에 담겨있다.

 이곳 신흥동 인천시장 관사는 옛날 ‘부윤관사’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인천부윤은 일제강점기 인천부의 행정 수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이 인천시장 관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이후인 1946년 3월로 추정된다. 1946년 대중일보 3월 8일자 2면에는 ‘어제 새벽 수도 단수 중에 인천시장 관사 전소(全燒), 원인은 조사 중 누전설 유력’ 기사가 확인된다. 기사에 언급된 시장관사는 ‘송학동’이다. 화재로 시장관사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신흥동 시장관사에 머무른 역대 인천시장은 1946년 1대 임홍재 시장부터 12대 윤갑로 시장까지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곳이 시장관사로 쓰인 시기는 해방 이후 임에도 ‘부윤관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해방 직후 인천시로 불렸는데, 1945년 11월부터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 제정 이전까지 4년 가까이 인천부로 불렸다. 이곳 주택이 처음 관사로 사용되었던 시기가 이 기간에 해당해 ‘부윤 관사’로 불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곳 관사가 1954년 제6대 김정렬 시장부터 사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파악할 수 없는데, 추후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긴담모퉁이집 건물 전경. 긴담모퉁이집 1충 필사의 방 책상. 긴담모퉁이집 1층 공간과 긴담모퉁이집 1층 평면도.

 ■ 문화주택의 흔적=신흥동 옛 시장관사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이다. 이 주변에는 시장관사와 유사한 형태의 2층 구조 집들이 다수 있는데, 이러한 양식의 주택은 여러 주택 분류 방법 가운데 하나인 ‘문화주택’으로 분류된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흥동 일대에 건립됐는데, 일본의 전통적 2층 구조 목조 주택에 서구식 근대 건축 요소를 도입한 점이 특징이다.

 건물 신축 연도는 1938년으로 파악된다. 조선농공주식회사가 현재 부지를 매입한 이후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당시 조선농공주식회사가 신축한 주택은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 일본인들이 다수 건축한 문화주택이라 할 수 있다. 문화주택이라는 단어는 1920년대 건축 잡지나 일간지 등을 통해 ‘생활개선’의 일환으로 소개되고는 했다. 중요한 내용은 도시 중산층이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주택으로, 좌식이 아닌 입식 생활, 접객이 아닌 가족에 중요성을 두는 공간 구성, 화장실·부엌 등의 위생 설비 구비 등이었다고 한다. 집들은 대부분 목조로 지어졌고, 외벽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됐으며, 지붕은 경사지붕, 지붕 아래에는 환기를 위한 길다란 환기창이 설치됐다. 약속이나 한 듯 유사한 외관의 이러한 문화주택은 일본인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인들 중에서도 상류층이나 지식인 계층 중에 거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보고서는 “당시 신문기사나 문학작품 등에 그려진 문화주택에서의 삶은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입식 생활을 하며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예술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지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긴담모퉁이집1층 필사의 방. 긴담모퉁이집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긴담모퉁이집 1층에 전시된 긴담모퉁이집 미니어처. 긴담모퉁이집 2층 평면도.

 ■ 인천 대표 금은방 ‘형제사’의 기억=1977년 이 집을 매입한 이경부는 배다리 귀금속 상점 ‘형제사’를 인천의 대표 예물점으로 키운 사업가였다. 이경부씨는 주택을 매입한 이후 대대적인 개축을 진행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집은 1938년 신축된 이래 이름난 ‘좋은 집’이었다고 한다. 높은 담장과 일본식 고급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선 이 동네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강화 출신의 이경부는 광복 직후 보잘 것 없는 배다리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뛰어난 사업수단으로 성공을 이루고 인천에서 이름난 이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경부는 어린 시절부터 이 집을 선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은 접근할 수 없었던 일본 순사가 칼을 차고 순찰하던 일본인 전용 동네, 그 언덕 위의 집이 꿈이었다.

 보고서에는 이경부의 차남 이정록씨의 이 같은 내용의 구술채록이 담겨있다.  “시장관사 인근이 옛날에는 일본 사람 동네였잖아요. 아버님 말씀이 그곳에 일본 순사가 칼을 차고 순찰을 돌았대요. 그러니 한국 사람은 들어올 수도 없는 동네거니와 한편으로는 그곳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거죠. 아버님이 일정(일제강점기) 때부터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런데 그 꿈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니까 ‘내가 이 집을 꼭 사서 내 집으로 만들겠다’ 고 마음먹고 결국에는 시장관사를 매입하셨죠.”

 1977년 5월 계약을 체결한 이경부는 약 1년에 걸쳐 대대적인 개축을 진행했다. 일본식 다다미방과 미닫이문 복도를 거실로 재구성하고, 서울 기술자를 불러 인천 최초로 복층유리(페어글라스)를 설치했다. 바닥에는 쪽마루를 깔고 거실에는 전면 장식장을 짰다. 2층만큼은 일본식 벽장 ‘오시이레’와 장식단 ‘도코노마’를 원형 그대로 남겨뒀다. 정원에는 향나무 세 그루를 이전 집에서 직접 옮겨 심었다. 가족은 매일 아침 정원에 물을 주고 나무에 막걸리를 비료로 뿌렸다.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경부씨 형제는 1945년부터 ‘형제시계포’라는 이름의 점포를 차렸다. 이경부씨의 형님은 시계 도매를, 이경부씨는 소매를 했다고 한다. 현재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다 한국전쟁 이후 배다리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다. 현금으로 즉시 결제하는 거래 방식으로 좋은 물건을 싸게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상호를 ‘형제사’로 바꾸고 귀금속으로 업종을 넓혔다. 인천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강화·옹진 섬 사람들까지 예물을 사러 형제사를 찾았다. 1970년대에는 화평동에 ‘시광사’, 신포동에 ‘현대사’까지 운영했다. 극장 황금 시간대에 광고를 내보내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차남 정록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컬러 애니메이션으로 광고를 만들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달나라가 폭발하고 거기에서 ‘형제사’ 하면서 금은보석이 막 터져 나오는 광고였어요. 그게 사람들 뇌리에 제일 강하게 남아있죠.”

긴담모퉁이집 2층에서 본 정원. 긴담모퉁이집 건물 1층 주방. 긴담모퉁이집 건물 2층에서 본 복도와 창문. 긴담모퉁이집 전경.

 ■ 열린 공간이 된 현재=인천시는 지난 2020년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마치고 2023년 5월 ‘긴담모퉁이집’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개방했다. 내부는 시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꾸민 서재와 음악감상 공간으로, 외벽은 인천원로작가회와 함께 조성한 골목갤러리 등을 꾸며 운영했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마당은 사계절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풀등정원으로 단장했다. 개관 첫해 누적 방문객 1만 명을 넘기기도 했다.

 인천시는 외부 기관에 위탁해 이곳 운영을 맡겨오다 올해 초부터 인천문화재단이 맡아 운영 중이다. 인천문화재단은 문학을 중심으로 한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신흥동 옛 시장관사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긴담모퉁이집 2층에서 본 정원. 긴담모퉁이집 건물 1층 주방. 긴담모퉁이집 건물 2층에서 본 복도와 창문. 긴담모퉁이집 전경.
긴담모퉁이집 지하에 마련 LP음악감상실. 긴담모퉁이집 지하에 마련된 음악감상실에 설치된 LP 플레이어. 긴담모퉁이집 평면도 참고용. 

/경인일보=김성호 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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