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성장 개선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중동 상황 관련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사태 추이와 파급 영향을 조금 더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28일 금융통화위원회는 신현송 한은 총재 취임 후 처음 주재한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8연속 동결을 결정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면 금융·외환시장 변동성도 낮아지겠지만, 반대로 확전 양상으로 흐를 경우 시장이 다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해 2월과 5월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췄다.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과 국내 건설경기 악화, 미국 상호관세 영향이 겹치면서 통화 완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 주택 가격 오름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되면서 7·8·10·11월 잇달아 금리를 동결했다.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도 주요 고려 사항으로 떠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반도체 수출 등에 힘입어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세에, 목표 수준(2.0%) 근처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물가상승률 등을 이유로 1·2월 금리를 동결했고, 4월에는 중동 전쟁에 따른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 하방 압력을 고려해 동결 기조를 지속했다. 이날 결정으로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 10일 이후 다음 회의(7월 16일) 전까지 약 1년 동안 연 2.50%로 고정된다.
다만, 금통위원들은 이날 회의에 앞서 일관되게 통화정책 방향 전환, 즉 금리 인상 사이클로의 진입을 사실상 공식화한 상태였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상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운을 띄웠고,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신성환 전 금통위원은 퇴임 직전인 11일 간담회에서 “물가 우려로 금리 인하를 논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전 위원 후임인 김진일 금통위원도 15일 취임 직후 기자들에게 “보험 차원에서라도 반클릭 정도 이자율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 변화는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면서 한층 뚜렷해졌다.
지난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2.5% 상승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월(2.5%)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원재료가 28.5% 급등해 198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2.6% 올라 목표 수준(2.0%)을 상회했다. 석유류가 21.9% 올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7월(35.2%) 이후 3년 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나타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과 2월 2.0%로 안정됐으나, 3월 2.2%, 4월 2.6% 등으로 크게 뛰었다. 5월 오름폭은 더 확대될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반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로 성장 지표는 크게 개선됐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7%(직전 분기 대비 속보치)에 달해, 한은이 지난 2월 제시한 전망치(0.9%)의 두 배에 가까웠다. 이를 반영해 한은은 이날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반으로 코스피가 8,200선을 웃도는 등 증시도 활황이다. 그만큼 통화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 필요성은 줄고, 오히려 수요 측 물가 상방 압력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환율과 집값 불안도 재차 고개를 드는 국면으로 평가된다.
이달 초 1,440원대까지 하락했던 환율은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세 등의 영향으로 반등해 지난 22일 장중 1,520원에 바짝 다가섰다. 1,540원대에 육박했던 지난 3월 말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언제 다시 튀어 오를지 안심하기 어려운 상태다.
아울러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셋째 주(1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평균 0.31% 올랐다. 3주 연속 상승 폭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방침을 밝힌 1월 넷째 주(0.31%)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 이날 점도표 형식으로 공개된 금통위원들의 6개월 후 기준금리 전망에서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이 확인됐다.
전체 21개 점 가운데 현재 금리보다 0.50%포인트(p) 높은 연 3.00%에 찍힌 점이 10개로 가장 많았고, 2.75%에는 7개가 찍혔다.
금통위원 대부분이 6개월 후 금리 인상을 예상한다는 의미다.
현재 금리와 같은 2.50%에는 2개가 찍혔지만 그보다 낮은 지점에는 없었다.
점도표는 신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 7명이 저마다 염두에 둔 6개월 후 기준금리 수준을 점 3개씩 총 21개 찍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점은 기본값과 상·하방 리스크를 고려한 값을 각자 3개씩 찍되 모두 같은 금리 수준을 짚어도 무방하다.
이 제도는 지난 2월 처음 도입됐으며 매년 2·5·8·11월 4차례에 걸쳐 공개된다.
이달 점도표는 ‘비둘기파’가 우세했던 석달 전 구도와는 크게 달라졌다.
2월 점도표에서는 21개 가운데 16개가 2.50%에 몰려 대부분 금리 동결을 점쳤다. 그보다 낮은 2.25%에는 점 4개가 찍혔고, 높은 지점(2.75%)에 찍힌 점은 1개 뿐이었다.
그 사이 중동 전쟁이 발발하며 유가가 급등하고, 반도체 수출 호조에 1분기 성장률은 예상 밖에 큰 성과를 내는 등 통화 정책 여건이 급변해 점도표 분포도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는 점도표와 별도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이번 기준금리 결정에 대해 금통위원 5명은 찬성했으며,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위원은 기준금리를 2.75%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신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향후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상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신 총재는 “금리 인상의 시기와 속도는 앞으로 입수되는 데이터를 토대로 물가 상승 압력의 확대 정도와 경기 흐름, 금융안정 상황 등을 점검하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운을 뗐다.
이어 국제 유가가 상당 기간 높게 유지되면서 물가 상방 압력을 키울 것으로 예상되는 점, 반도체 호황에 따른 경제 성장 개선세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는 점, 환율과 집값이 불안한 점 등을 일일이 열거했다.
신 총재는 “정책 목적이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며 “두 마리 토끼, 세 마리 토끼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딜레마가 생긴다”고 비유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에는 물가를 보나 성장을 보나 환율을 보나 부동산을 보나 갈 길이 비교적 명확하다”며 “앞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여러 요소를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달아오르는 주식시장과 관련해서는 “당분간 ‘빚투(빚내서 투자)’가 시스템 리스크까지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신 총재는 “시스템 리스크가 되려면 다른 부문과 연결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주식시장은 개별 시장으로 봐도 될 것 같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주가가 단시간에 급하게 올라갈 경우 여러가지 시장을 둘러싼 행태 변화가 생길 수 있고, 가장 대표적으로 얼마나 ‘빚투’ 현상이 생기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빚투는 정상적인 수요 곡선을 바꿔두는 요소가 될 수 있다”라며 “수요곡선은 대개 우하향 곡선인데 빚투가 많으면 가격이 내려갈 때 반대매매가 이뤄지고 자금이 회수되기에 수요곡선이 거꾸로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는 다른 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효과’가 어떤 식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봐야한다”라며 “빚투가 만연해 작은 충격이 아주 큰 시장 조정으로 이어지면 빚투 안 한 사람도 그만큼 손해를 볼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