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원포럼]법관과 균형감각

성기문 춘천지방법원장

대법원 청사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법정 입구에 위치한 '정의의 여신상'을 볼 수 있다. 위 여신상은 '유스티치아(Justitia)'로 대변되는 서구식 정의의 여신을 한국적인 미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공정성을 그리고 칼은 엄정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눈을 가린 것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불필요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의미다. 반면 대법원 청사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지만 다른 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눈도 가리지 않았다. 법전을 들고 있는 것은 법에 따라 엄정하게 심판한다는 뜻이고, 눈을 가리지 않은 것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라는 뜻일 것이다.

법관은 정의의 여신상이 말해 주듯이, 재판을 함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과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법에 따라 판단하는 엄정함이 필요하다. 또한 사건 당사자의 성별, 출신, 빈부, 사회적 지위에 따른 편견이나 선입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 법원 대회의실 벽에는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모양에 따라 휘어지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는 글이 걸려있다. 법관은 자신의 잣대가 중심에 서 있는지 끊임없이 자기점검을 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재판의 근본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고(誠意), 이를 위해서는 혼자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愼獨)”고 하였다. 법관은 사적 공간,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공간에서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세대 차이, 빈부 차이, 이념의 차이에 따른 첨예한 갈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여과 없이 법정으로 몰려오고 있고 재판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법관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즘 재판에 있어서 법관의 균형감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이다.

법관이 균형감각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험은 편견을 유발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피해를 입은 경험은 법관이 동종의 범죄에 대하여 지나치게 엄한 양형을 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법관은 재판을 함에 있어서 국민의 법의식 내지 법감정을 유념해야 한다.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재판은 사법불신을 불러온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여론에 너무 민감해서도 안될 것이다. 심사숙고한 끝에 나오는 의견은 존중해야 하지만, 일부 인터넷 댓글 등 사려 깊지 못한 의견에 너무 휘둘려서도 안 된다. 더불어 여론의 찬사를 받으려는 유혹에도 초연해야 한다. 법관의 업무는 어떤 면에서는 자전거 타기와 유사하다. 자전거를 타고 잘 달리려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심을 잘 잡아 거센 외풍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춘천지방법원은 지난 한해 동안 국민참여재판, 시민사법참여단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시민들에게 재판이나 법원행정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법원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국민을 위한 법원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도민 여러분도 우리 법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들을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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