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고구려 3,000년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 같이 죽겠노라~” 청소년기에 군인들이 행렬을 지어가면서 부르던 군가를 아이들은 군인들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 높여 따라 부르곤 했다. 군가의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면 인생의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적과 싸우다 죽고 나서 나라가 살아난다면 밤사이에 풀숲에 내린 이슬처럼 사라진다고 해도 괘념치 않겠다면서 노래를 불렀던 당시의 군인들…. 그들은 맹목적으로 그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 나라에 위기가 닥치거나 또는 전쟁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군가를 불렀던 것이다.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결연한 의지가 없으면 감히 그런 용어를 쓸 수 없다. 광복과 더불어 처음으로 조직됐던 당시의 국방군. 그들은 누구였던가. 가난에 쪼들리며 끼니를 거르던 농부의 아들들이며, 먹을 것이 없어 산골로 들어가 화전 밭을 일구던 화전민의 아들들이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낡은 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 밤새워 고기를 잡던 어부의 아들들이 그들이며, 시장에서 등짐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벌이를 했던 지게꾼의 아들들이 그들이었다.
남들처럼 배우지는 못 했지만 독립된 나라가 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일제강점기의 아버지들이 갖은 고생을 다하며 기른 아들들이 그들이었다. 그 아들들은 일제의 잔혹했던 과거를 듣고 자랐기에 나라가 귀한 것을 알았으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나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바치겠다는 각오를 하며 자랐고 군에 들어가서는 애국으로 똘똘 뭉쳐진 군가를 열창했던 것이다.
6·25 전쟁 3년간에 걸쳐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피해는 통계에 잡힌 이상으로 많았다. 그 귀한 대한의 아들들은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산골짜기에서 “어머니!”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은 것이니 아! 가여운 우리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라 위해 목숨을 바쳤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일어설 수가 있었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며 선열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