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 춘천시 효자동 대로변의 오래된 벽돌 건물 2층. '슬로우 모먼츠(Slow moments)'라는 보일 듯 말 듯한 간판이 달린 99㎡ 남짓한 사무실의 문을 여니 '뜨개질 세상'이 열렸다. 뜨개질 인테리어 완제품, 뜨개질을 할 수 있는 재료 패키지 상품 등이 세련되게 전시돼 있었다. 임직원 6명은 모두 30대 안팎의 여성들이었다.
이 '공방'의 성장세는 '공장' 못지 않다. 박정현 대표가 30대 초반이던 2016년 자본금 100만원을 들고 창업한 ㈜하울링은 지난해 연 매출액이 5억원을 넘었다. 이런 급성장의 제1원동력은 '온라인 시장 진출'이었다. 하울링은 강원도의 여성 일자리 창출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업 기업이다.
■'경험'도 상품이 되는 시대다=박정현 대표는 결혼 후 춘천에 정착하며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창업에 나섰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께 전수받고 취미 이상으로 좋아했던 '뜨개질'로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 2016년 초창기 사업 모델은'뜨개질 교실'이었다. 하지만 춘천이란 지역에서 고객 확보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후 뜨개질 완제품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역시 벽에 부딪쳤다. 인건비를 고려한 수공예 제품의 가격과 소비자가 선호하는 가격대는 차이가 컸다. 박 대표는 완제품 대신 '뜨개질 재료 세트(키트)'를 팔기로 했다. 그는 “뜨개질에 관심은 있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전국의 초보들을 고객층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부가가치 창출의 포인트를 잡아라=㈜하울링이 '슬로우 모먼츠'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는 '뜨개질 DIY 키트'의 가격대는 1만~11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키트 안에 실과 코바늘만 넣고 팔았다면 도매상들과의 단가 출혈경쟁에 밀려 금방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울링의 뜨개질 키트가 차별화를 이루는 포인트는 '도안'에 있다. 소비자에게 실과 코바늘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함께 파는 것이다.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2019년 뜨개질 책까지 출간했던 박정현 대표는 “뜨개질 도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게 차별화된 역량”이라고 말했다. 키트 안에 들어 있는 A4 용지의 뜨개질 도안은 ㈜하울링만이 갖고 있는 일종의 지적 재산권이다. 무한 가격경쟁이 이뤄지는 온라인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가격 설정권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동영상으로 소비자와 신뢰를 쌓아라=온라인으로 완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주로 사진과 활자로 제품 정보를 전한다. 하지만 하울링은 '뜨개질을 하는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동영상을 적극 활용한다. 주 고객층인 초보들이 뜨개질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동영상으로 방법을 알려준다. 박 대표는 “사진은 보정이 가능하지만 동영상은 있는 그대로 전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정보 신뢰도가 더 높다”며 “동영상 정보 제공 여부가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하울링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이 늘면서 20~30대 수도권 여성 고객층이 크게 늘었다. 박정현 대표는 “국내 시장도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해외 온라인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신하림기자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