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졸하고 산뜻하며,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생물명도 많지만 뜻을 몰라서 간간이 성가시고, 가르치고 배우는 이의 애간장을 태운다. 결단코 단순히 '따지기 좋아하는 과학자'라 그런 것이 아니고, 뜻을 알고 써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다하여 붙여진 흑산도(黑山島)는 목포에서 뱃길로 약 93㎞, 옛날 돛단배로 1주일은 족히 걸리는 먼 섬이었기에 귀양지로도 자주 쓰였다. 손암 정약전(巽庵 丁若銓·1758~1816년)도 1801년 천주교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되어 16년 동안 부근 수산동식물 200여 종을 조사하고 채집해 '자산어보(玆山魚譜)'라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생물도감을 남기셨다. 만일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도감은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자이신 정약전 선생을 그지없이 존경한다. 기록은 과학을 낳는다.
책 중에 우리가 흔히 지나쳤던 생물 이름에 관한 부분도 소개된다. 말미잘은 왜 이름이 말미잘이란 말인가? 필사본으로만 남아 있는 기록에 말미잘은 한자로'홍말주알(紅末周軋)'이라 쓰여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末)은 미(未)의 오기로, 홍미주알(紅未周軋)이 맞다. 요샛말로 '붉은미주알'이고, 미주알은 큰창자의 끝부분을 뜻한다고 했다. 정약전은 말미잘을 “이질을 앓은 사람이 탈항(脫肛)한 것 같다”고 비유했다 한다.
필자도 여태 '말미잘'의 어근(語根)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쳐 왔다. 실제로 한바탕 썰물이 진 다음 바닷가 '조수웅덩이(Tide pool)'의 돌 틈 사이에 숨어서 깡똥한 원색의 촉수를 사방으로 뻗고 있는 야리야리한 말미잘이 있다.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가 너부시 엎드려 손가락을 말미잘 입(항문도 겸함)에 우악스럽게 우겨 집어넣어보면, 미끈미끈하고 부들부들한 말미잘이 단박에 온몸을 바싹 오므리면서 손가락을 꽉 죄어 온다. 남세스럽고 발칙하게도 꼭 '말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듯이 말이지. 결국 말미잘이란 말은 '말의 미주알', 즉 '말똥구멍'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