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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상처, ‘강제징집과 녹화사업’]1980년대 ‘강제징집·녹화사업’ 은 왜 강원대로 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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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상처,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성조기 소각사건 이후 강원대 탄압 집중
정재웅·이헌수 등이 주도했던 반미운동
이후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자 속출

◇강원대 학생시위

1980년대 5·18 민주화 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녹화사업'을 민주화 운동에 저항하는 학생운동 탄압 수단으로 활용했다. 학생운동 주력을 강제징집 하거나 가혹행위 등 고문을 통해 프락치로 둔갑시켜 학생운동의 뿌리까지 파헤치려고 했다.

군사정권의 녹화사업으로 인해 수도권은 물론 강원대를 비롯한 도내 각 대학의 피해학생들이 발생했지만, 특히나 강원대에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배경에는 1982년 4월 '성조기 소각사건'이 최우선으로 꼽힌다.

같은해 3월 부산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및 독재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물으며 발생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을 계기로 공안정국을 심화하던 전두환 정권은 강원대의 '성조기 소각사건'을 같은 선상에서 봤다.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빌미로 방화범 및 전단살포범, 그리고 배후조종 등의 혐의를 모두 끌어모아 이들을 집시법 및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한 군사정권은 천주교원주교구 최기식 신부도 국보법 및 범인은닉 혐의 등으로 구속하는 등 속전속결로 대처하며 공안정국을 강화했다.

하지만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뒤 한달여 만에 강원대에서 성조기 소각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이 군부독재를 비호하고 있다는 여론이 전국에 확산될 수 있다는 정권 내부의 우려도 강원대가 당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주요 대상이 된 원인 중 하나로 풀이된다.

강원민주재단이 정리중에 있는 ‘강원도민주화운동 편집본’에 따르면 1982년 4월22일 발생한 강원대 성조기 소각사건은 당시 강원대 ‘민중문화연구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재웅·이재영·박인균·이헌수·김래용·김을용·황기면과 성결신학대 출신 송민석 등이 주도한 사건이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 분담에 따라 이날 낮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김래용과 이헌수가 성명서를 낭독한 후 성조기에 불을 붙였다. 이 시간에 맞춰 각 단과대와 춘천 명동에서 유인물을 살포하던 이들은 모두 체포돼 혹독한 조사를 받은 후 모두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살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다수의 인사들은 해당 사건 이후 강원대에 대한 집중 탄압이 이뤄졌다고 봤다. 강제징집 피해자인 최모씨는 "강원도에서도 여러 학생운동이 있었지만 이런 대형 사건이 발생하니 당국에서도 이를 의식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한 것 같다"며 "나는 성조기 소각 사건에 도움을 주지 않았는데도 서울지역 대학생들 사이에서 강원대 학생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는 분위기가 컸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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