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다시 화엄(華嚴)사상으로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조계종 원로의원

인류 역사는 ‘자원의 침탈사(侵奪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경시대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에서 시작해 대항해시대의 식민지 확장, 산업혁명, 중동에서 벌어진 오일 전쟁 등 지구에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후 10만 년 동안 끊임없이 싸워왔다. 문명사회라 일컫는 21세기에도 이는 변함이 없다. 다만, 교묘해졌을 뿐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그면서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겨울 난방비고지서를 받아본 국민이 갑자기 껑충 뛴 사용료에 경악했다고 한다. 어느 목욕탕 사장은 1천만 원이 넘는 고지서를 받았다고 한다.

화석연료는 지구를 괴멸로 이끌고 있고 그마저도 매장량이 얼마 안 남았다. 이를 대체할 신에너지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세기까지 벌어졌던 자원 침탈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뿐인가? 새로운 기술은 인류의 삶에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지만, 그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 알고리즘이 그렇다. 포털에서 알고리즘을 검색하면 조작,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 불공정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이에 관련된 기업들도 모두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이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근본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하지만 동시에 진보의 역사이기도 하다. 느리지만 어찌 되었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건데, 최근의 지구촌 모습은 오히려 문제가 하나씩 더 누적되고 더 복잡하게 꼬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소승은 2023년 계묘년에 다시 ‘화엄 사상’을 제창한다.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주의와 사상이 등장했지만, 지금 21세기에 꼭 필요한 사상은 ‘화엄 사상’이다.

광대무변한 화엄 사상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본 철학은 ‘법계연기(法界緣起)’, 즉 우주 만물은 그 어느 하나도 홀로 있거나 홀로 일어나는 일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가 원인이자 결과로 엮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립을 초월해 하나로 융합하는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도 화엄 사상의 요체다.

현대는 개성의 시대다. 동시에 복잡한 이해관계에 엮여있다. 저마다 개성을 살리되 서로 존중하고 융화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잡화엄(雜華嚴)’의 세계다. 화엄경의 본래 이름이 ‘잡화엄’인데, 이는 갖가지 꽃으로 장엄(莊嚴)한 경전이라는 의미다.

모든 꽃은 저마다의 멋과 향이 있다. 개나리는 철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철쭉은 개나리를 능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이기에 참다운 사랑과 자비가 나온다. 동체대비(同體大悲)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집안일수록 우환이 잦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수많은 피란민이 발생한 우크라이나, 지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튀르키예가 그렇다. 바로 옆에 있는 시리아는 10년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는데 이번 지진으로 또 한 번 참혹해졌다. 생명 철학을 담은 화엄 사상을 통해 지구촌에 만연한 갈등을 치유하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한다.

또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품에서 의료진이 기적이라 작명한 탯줄 단체 구조된 아기의 생명체에서 다시 1년여 계속된 우크라이나 전쟁 폐허속에서 생명(生命)의 귀중함을 깨닫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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