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밤안개' 가수 현미 별세…자택서 쓰러진 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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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군서 가수 생활 시작…남편 이봉조 작곡가와 히트곡 다수 배출
데뷔 50년 회견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
정훈희 "연예인 '끼' 타고난 가요계 왕언니"…비보에 추모 이어져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사진은 지난 2007년 11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현미. 2023.4.4 [연합뉴스자료사진]

힛트송 '밤안개'로 유명한 원로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경찰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김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평양에서 거주했다. 1·4 후퇴가 있을 당시 평안남도 강동에 있는 외가로 피난을 갔다. 이 과정에서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다가 60여년이 지난 뒤에서야 동생들과 평양에서 재회하기도 했다.

현미는 이 같은 아픈 경험을 계기로 지난 2020년에는 이산가족 고향체험 VR(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우리나이로 스무살 때인 지난 1957년 그 당시 음악인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일정을 펑크낸 어느 여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가수가 됐다.

현미는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3년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현미는 1962년 발표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누렸고 남편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했다.

◇가수 현미[O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지난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 모습"이라고 음악 활동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고인의 지병 여부와 신고자인 팬클럽 회장과 유족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빈소는 서울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현미는 19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1997년 제11회 예총예술문화상 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홍보대사를 지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고니, 이영준이 있다.

한편 현미가 85세를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요계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생 때 현미의 남편인 스타 작곡가 이봉조의 곡 '안개'(1967)로 인기 반열에 오른 후배 가수 정훈희는 "연예인 '끼'를 타고난 가요계 왕언니"라고 고인을 회상하며 울먹였다.

'안개'로 인연을 맺게 된 뒤 50여년간 현미를 친언니처럼 따랐다는 정훈희는 "우리는 노래는 다 잘하는데 그중에서도 끼를 타고난 사람이 있다. 현미 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며 "그때는 미군들 상대로 노래하니까 할리우드에서 하던 것들(퍼포먼스)을 했는데 춤을 정말 잘 췄고 허스키한 보이스도 독보적이었다. '언제 언니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라고 꿈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수 현미의 데뷔 음반이자 출세작 '밤안개'[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어 "옛날에는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는 분위기여서 무대에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대기실에서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성대모사도 현미 언니가 최고였다"며 "한 시간 넘는 쇼를 혼자 해도 거뜬히 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태어났으면 날아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훈희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어색하기만 했던 연예계에 적응할 수 있던 것도 현미 덕분이라고 했다. 현미가 목욕탕, 미용실을 데리고 다니며 살뜰히 챙겨줬다고 했다.

그는 "해외 가요제에 나갈 때는 언니가 한복도 직접 챙겨서 보내주고, 드레스는 어떻게 입으라고 조언도 해줬다"며 "막냇동생처럼 챙겨주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셔서 너무 황망하다"고 했다.

가수 혜은이도 현미를 "따뜻한 선배"로 기억했다.

혜은이는 "1980년대 야간 업소에서 공연할 때 자주 뵀는데 잘 챙겨주셨다"며 "용감한 내면을 갖고 계셨고, 늘 노래를 파워풀하게 부르셔서 후배 가수로서 참 부러웠다. 건강하고 활발한 선생님이셨는데 너무 기가 막혔다"며 울먹거렸다.

현미는 가요계 내에서도 시원시원한 성격에 어디에서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왔던 인물로 꼽힌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제가 데뷔할 때 이미 대선배셨던 분"이라며 "후배들에게 권위를 세우지 않고, 벽 없이 친구처럼 대해주셨던 분"이라고 고인과의 기억을 돌아봤다.

이 회장은 "2월 가수협회 총회 때 뵀을 때 어깨가 많이 굽으셔서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며 "그래도 항상 밝으시고, 어제 저녁에도 지인분들과 식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작스럽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봉조 악단 소속으로 TBC 방송에 출연하며 현미와 연을 맺었다는 트럼펫연주가 최선배는 "고인은 성격이 활달하고 호탕한 면이 있었다"며 "참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현미와 친분이 두터운 한 공연 관계자는 역시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전화해서 안부를 여쭤보셨다"며 "갑작스러운 비보에 황망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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