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오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기란 어렵지만, 사회가 싹을 틔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엄한진 한림대 교수가 증오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질병’이라는 진단에서 출발한 책 ‘증오를 품은 이를 위한 변명’을 펴냈다. 책은 ‘증오의 사회학, 그 첫 번째’를 부제로 증오의 개념부터 기원, 대상, 주체, 작동 방식과 해답까지 종합적으로 들여다본다. 저자는 다양한 증오 현상에 대해 용납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기독교 서구사회에 대한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급진적 이슬람주의 세력, 세계화와 이주민에 반발하는 유럽의 극우주의, 중동의 성소수자혐오, 한국의 여성혐오와 이주민혐오현상, 프랑스를 두 세계로 갈라놓은 동성결혼 논쟁 등의 사례를 통해 증오 현상에 대해 분석한다.
사실 평범한 누구나 증오를 행할 수 있다. 다만 저자는 증오를 품게 되는 것은 개인이라기보다 집단이고, 집단이기보다 사회 전체라고 짚는다. 특정 사회 전체가 특정 집단에 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증오를 표출하는 당사자의 개인적 책임보다 구조나 공동체 전체의 책임에 주목한다.
또 증오가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공격일 때가 많다고 꼬집는다. 증오는 위계가 처한 위기의 산물이자 위계를 지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며, 국가는 증오를 도입하고 극단화하는 강력한 행위자로 기능한다. 따라서 저자는 증오에 대한 대응도 개인이 아니라 국가로 향해져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증오는 빈곤, 실업, 불황, 종속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로는 어쩌지 못하는 구조의 무게에서 기인한다. 특정 유형의 증오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은 섣부르고 해악적이며 반윤리적일 수 있다. 인간형이나 유전 등의 선천적 요인은 물론, 계급이나 민족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결정되는 ‘증오하는 인간’도 없다. 이 책은 누군가의 혐의를 묻기보다 그 역시 자신의 이웃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임을 변호하고자 한다”고 했다. 성균관대출판부刊. 416쪽. 2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