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칼럼 신호등]노병들의 恨(한)

이규호 사회체육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1951년 1월9일 교정에 모인 태백중 학생 127명이 외쳤다. 이들은 1·4 후퇴 5일 만에 6·25 참전을 다짐했다. 어린 나이에 연필 대신 총을 손에 쥐었다. 부모의 만류,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이들의 투지를 꺾지는 못했다. 육군 3사단 23연대에 자진 입대해 영월 녹전지구 전투와 양구 가칠봉 전투 등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모두 18명이 전사했다.

올해 6·25 정전 70주년을 맞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만큼 목숨을 바쳐 싸웠던 학도병들은 대부분 구순(九旬)을 앞뒀거나 넘긴 노병이 됐다. 그동안 거의 한평생을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계셨을 테다. 그에 걸맞은 예우가 필요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정부에서 지급하고 있는 참전수당은 월 39만원이다. 강원자치도에서 6만원, 각 지자체에서 15만~30만원을 추가로 주지만 최근 물가를 생각하면 생활비에 보태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6·25참전유공자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8%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올 4월 부산의 한 마트에서 생활고를 겪던 80대 참전유공자가 식료품을 훔치기도 했다. 한 유공자는 “현역 이등병 급여가 월 60만원이나 되는데, 우리는 실제 전쟁에 나갔어도 병사보다 예우가 낮다. 유공자가 반찬 훔치는 나라”라고 토로했다.

6·25참전유공자회도 존폐 위기다. 올 5월 말 기준 도내 6·25참전유공자는 2,124명으로 연평균 560명 감소하고 있다. 6·25참전유공자회는 4~5년 후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국회에 상정된 ‘유족 회원자격승계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광복회 등처럼 자녀(유족) 및 손자·녀도 회원 가입이 가능하도록 자격을 확대해 유공자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인데 수년째 계류 중이다.

하지만 암담하지만은 않다. 지난 26일 춘천에서 열린 ‘제복의 영웅 사진관’ 행사에서 만난 대다수의 노병은 케케묵은 한(恨)이 드디어 풀린다고 했다. 이제껏 제대로 된 제복 없이 오른쪽 가슴에 태극기가 박힌 일명 ‘안전 조끼’가 대신했는데 주위 시선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했다. 시장 상인 같다고, 자원봉사자 같다고.... 이 때문일까. 새로운 제복을 입고 눈물을 보인 노병들도 더러 있었다. 그간 속으로 얼마나 부끄럽고 서러웠을까.

정치권에서도 유공자들의 예우를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원자치도의회는 최근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참전유공자 보훈명예수당의 지급 기준 통일과 수당 인상을 촉구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70여년 전 어떠한 대가도 없이 ‘조국 수호’라는 일념만으로 싸운 노병들은 다시 전쟁이 나도 참전하겠다고 한다. 수당이 부족해 가난해져도, 후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다. 현대인들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애국심은 차치하고 월 수십만원의 참전수당을 준다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겠는가? 6·25 참전 노병들은 현재 평균 나이 92.5세다. 향후 수년 안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다. 지금이라도 참전용사들에게 제대로 된 예우와 감사를 표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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