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주민 10명 중 1명(12.3%)은 30분 이내 응급실이 없는 곳에 산다. 전국 인구 평균 (4.1%)에 비해 4배나 높은 비율이다. 11.5%의 아동은 1시간을 이동해도 소아청소년과에 갈 수 없는 곳에 산다. 서울시내 어린이들은 겪지 않는 일이다. 수도권 인구는 2020년 전국 인구 비중의 과반(50.2%)을 차지한 뒤 2022년 50.5%까지 증가했다. 같은 시기 강원자치도내 인구는 156만172명에서 155만6,970명까지 줄었다. 수도권은 대형 병원 확장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등에 업고 지역의 의료 인프라마저 빨아들이는 중이다. 임계점을 넘어선 불평등과 고령화의 시대, 강원자치도 주민들의 건강과 돌봄은 어떤 위기 속에 놓여 있을까. 또. 강원특별자치도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원일보는 1년에 걸쳐 국내 보건·의료 전문가, 현장 관계자들과 지역 상황을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취재를 진행했다. 그 결과를 7회에 걸쳐 싣는다.
■병원도·돌봄도 '먼 곳에'
삼척시 도계읍, 이곳은 삼척 시내에서도 30여분을 골짜기 쪽으로 더 달려야 하는 탄광 마을이다. 인접한 마을은 태백시 장성동. 도계에서 태백 장성까지, 그리고 다시 태백 시내까지 버스 두 번을 갈아 타고 달리는 2시간은 이 곳에 사는 김흥수(가명·82)할아버지의 병원 가는 길이기도 하다. 젊었던 시절 탄광에서 일을 했던 김 할아버지는 2002년 진폐 의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걷거나 일상 생활을 할 때도 숨이 찰 때가 많지만 병원도, 돌봄도 멀기만 하다. "강릉에는 좋은 병원 있어. 근데 여기는 없으니 진폐 약을 받으려면 태백까지라도 가는 수밖에 없어."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쌕쌕'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여나 가족이라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주민들의 불편은 더 심각해진다. 춘천시 북산면 오항리는 춘천시에 속한 지역이지만 가장 가까운 응급실에 가려면 차를 타고 달려도 춘천시내까지 40여분을 나가야 하는 농촌 마을이다. 신장질환으로 약을 먹고 있는 김진순(가명·76)할머니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이정우(가명·49) 씨의 유일한 보호자다. 정우 씨도 김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신장질환으로 인해 춘천시내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무릎이 불편한 김 할머니가 두 사람 분의 외출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전쟁이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짐을 싸서 정우 씨의 손을 붙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두 시간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를 놓치면 병원 예약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신장질환으로 인해 배가 '터지듯이' 아픈 밤에도 그저 통증이 사그라들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여름이면 그나마 낫지. 겨울에 나가면 춥고 깜깜해. 너무 힘들어." 김 할머니의 호소다.
■버스비도 두렵다…치료 포기하는 이유
험난한 길이라도 병원에 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까. 상당 수의 주민들은 치료를 포기하거나 스스로 통증을 관리할 민간요법을 찾는다. 도계읍에 거주하는 이순자(가명·71)씨는 30여년에 걸친 고된 가족 돌봄노동 끝에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게 됐다. 얼마 전부터는 손가락과 뒷목 아래 뼈가 튀어나와 빨갛게 붓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있다고 해도 얼마전까지는 삼척시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약을 처방을 수 있었지만 의원이 문을 닫으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졌다. 급한대로 약국에서 '마음 편해지는 약' 을 사 먹거나 효과가 있다는 약초까지 찾아다녀 봤지만 잠들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도 2시간. 차가 없는 이씨가 가기에는 어려운 거리다. "여기 튀어나온 데 만져봐. 옥수수 따고 고추 따고 그러고 살다 보니 그런가봐. 손가락 부은 건 동네사람들이 관절염이라고 하던데 내가 마땅히 치료받을 데가 없어서 바늘로 찔러서 피도 빼 봤어. 안 낫더라고. 근데 이걸 누구한테 말하겠어. 나이 들면 다 그래." 험난한 병원 가는 길과 돌봐줄 이 없는 환경은 이씨에게 체념을 강요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태백에서도 산자락으로 30여분을 더 가야 하는 철암동, 이곳에 사는 박순형(가명·77)할아버지는 매년 날씨가 추워질 무렵이면 원인 모를 열과 기침에 시달린다. 병원비는 의료급여로 해결할 수 있지만 수입이 없는 박 할아버지에게는 버스를 타는 교통비조차 두려운 돈이다. 태백 시내에 있는 의원에서는 의뢰서를 써 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온 몸이 아픈 채로 2차 병원에 갈 기운도, 그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도시락 지원 서비스와 방문간호 등의 혜택을 받을 때도 있지만 필요한 의료와 돌봄에 비해 할아버지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턱없이 적기만 하고, 그마저도 조각난 채 주변을 떠돈다. "내가 그나마 힘이 있는 건 여름 한 철 뿐이야. 가을만 돼도 움직이지를 못하겠어……." 박 할아버지의 한숨이 깊어갔다.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아니더라도 경제적 위기로 인한 의료 공백은 지역의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강원특별자치도 안에서 2만7,000세대의 지역가입자가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민을 위한 의료는 어디에
주민들의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역 주민들의 건강·돌봄을 위한 체계는 미진한 실정이다.
병·의원이 없는 지역에서 일차진료를 담당하던 보건소와 보건지소는 최근 공중보건의 감소로 인해 진료를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올들어 강원도내 보건·의료기관이 정부로부터 배정받은 공중보건의 인원수는 101명으로, 올 초 전역한 120명에 비해 19명이나 적다. 도가 자체 수요 조사를 통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 인원 143명에 비해서도 42명 부족한 숫자다. 이 때문에 도내 공중보건의 배치 대상 보건지소 4곳 중 1곳 (97개 중 25개 지소)에는 공중보건의가 배치돼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원이의원실을 통해 제출한 자료다. 보건지소는 순회진료 등을 통해 진료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태백시 철암보건지소의 신은주 간호사는 "더 많은 환자분들을 봐 드리고 싶어도 우선 진료를 할 공중보건의가 너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태백시와 같은 '시'단위 의료취약지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각종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읍·면' 위주로 진행하면서 국비 지원에서조차 배제되고 있다. 실제 철암보건지소의 경우 시설이 낡아 진료와 돌봄에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통한 국비 지원은 받지 못한 채 시설 보수를 이어가는 중이다.
■분절화된 의료, 농촌 모르는 의사
공중보건의가 있다고 해도 주민들이 실제 원하는 의료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는 점은 주민들의 의료 이용을 한층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대다수의 공중보건의들이 실제 진료 경험 없이 현장에 나오는데다 체계적인 관리와 감독이 이뤄지기도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김원이의원실을 통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전국에 배치된 의과 공중보건의 449명 중 151명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인턴 수련 등을 마치지 않은 일반의고, 79명은 방사선종양학과·병리과·핵의학과 등 농촌지역에 필요한 진료와는 거리가 먼 전문의였다. 김혜란 삼척 도계보건지소 팀장은 "지역 사정을 알고, 주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의료가 필요한데 실제 보건지소에 배치되는 공중보건의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며 "어르신들에 대한 종합적인 진료는 물론 처방까지 농촌에서 이뤄지는 의료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유경(강원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 부단장) 강원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주민들에게 필요하지만 충족되지 못한 의료에는 단순히 의료 이용을 못하는 상황 뿐 아니라 멀리까지 병원에 갈 수밖에 없어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 포기하게 되는 사례 모두가 포함된다" 며 "주민들이 적절한 선택권이 없어 지역 내 의료기관에서 필요한 의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어 “병원 방문동행 서비스 등은 비용이 지원되더라도 환자가 교통비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환자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사업은 아니기에 돌봄과 혼재된 건강 문제를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환자를 총체적으로 돌볼 수 있는 의료, 방문진료, 원격진료 등과 돌봄이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지역에 포진한 공공보건의료기관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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