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주민이 목소리 내야 바뀐다…시민의 요구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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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인력부족·돌봄과 의료 분절된 현실 바꾸는 열쇠는 ‘지역 책무성’
[건강, 지역책임을 묻다] ⑦ “주민의 건강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한국은 법으로 지역 주민들이 평등하게 보건의료를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다. 보건의료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보건의료 수요를 형평에 맞게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주민의 건강이 국가와 지방정부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한국 현실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아플 때 병원에 가지 못하고,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도 없다. 한국과 유사한 환경에서 지역 중심적 의료 체계를 만들고 있는 일본 사례를 검토해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건강, 지역책임을 묻다' 팀이 지난 7월 일본 현지를 시작으로 10월까지 전자우편, 메신저 등을 통해 수시 진행한 좌담회 내용을 종합해 싣는다. 좌담회에는 조희숙 강원대병원 부원장,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강원특별자치도청 공공의료과 곽덕진 주무관, 삼척의료원 김성단 총무팀장, 원주의료원 유영주 보건의료복지지원팀 사회복지사, 김수경 환자중심전환기케어연구그룹(PATRAN) 연구원이 참석했다.

◇'건강, 지역책임을 묻다' 팀의 일본 도쿄 좌담회 현장

■ 사회 시스템의 기반이 꽤 비슷한 일본이지만 지역 내 의사 부족, 의료취약지의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한 문제는 적었다. 강원특별자치도 내에는 무엇부터 적용해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

△김창엽 교수="많은 차이점이 지방정부의 책무성자치 구조에서 기인한다. 지방정부가 접근하는 정책의 섬세함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돗토리현만 해도 지방정부가 앞장서 지역 학생들의 진학 제도와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자치의대, 다양한 장학제도, 의사들의 커리어 등을 병행하며 하나하나 관리하고 있다. 한국 지역에서는 아직도 큰일이 나야 비로소 해결책을 찾는 시스템 아닌가.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조희숙 부원장="일본은 아직까지도 지역 의과대학 주임교수의 권한과 인맥이 지방 의사인력 수급에 영향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지방 의료기관의 인력을 구하는 시스템의 하나로 작동한다. 또한 지역의 지방자치 완성도와 의료인프라 요건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준화돼 의사들도 지방 근무를 꺼려하지만은 않는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금전적 유인 이외에도 지방에서 의사를 유치할 수 있는 지역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 각 의료기관과 정책 실무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어떤가.

△김성단 팀장="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하고, 돌봄을 제도화·관리를 수가화해 준비를 해 왔다. 한국은 미리 대비하지 못해 어르신들이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돌아가시는 것이 현실이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제도가 있지만 의료는 제외됐다. 이제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유영주 사회복지사="공공의료기관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일본에서는 공공의료기관이 주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제공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로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원활한 운영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곽덕진 주무관="공공의료기관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협력구조가 필요하다. 일본은 공공의료기관의 존재감이 다르다. 의료원과 지자체가 설립한 공공의료기관이 지역 의료의 중심을 잡고 있다. 강원자치도는 의사 구하기도 힘들고 경영 자체도 힘들다. 강원자치도와 의료원이 이제부터 치열하게 협력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부분이다."

△김수경 연구원="지역 내에 있는 의료기관들이 환자의 입장에서 치료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부분까지 접근하고 있다. 퇴원 후에 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편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창구가 개설되거나 노년기에 이용할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홍보가 진행되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7월 돗토리대부속병원을 방문한 '건강, 지역책임을 묻다' 팀. 아래 왼쪽부터 김창엽 서울대 교수, 타니구치 신이치 돗토리대부속병원 교수, 조희숙 강원대병원 부원장, 타케나가 아츠시 돗토리대병원장, 윗줄 왼쪽부터 유영주 원주의료원 사회복지사, 카미모토 미나코 돗토리대부속병원 특명교수, 김성단 삼척의료원 팀장, 본보 박서화 기자, 김수경 환자중심전환기케어연구그룹(PATRAN) 연구원, 곽덕진 강원특별자치도청 주무관, 모리타 리에 돗토리대부속병원 간호부장, 츄다 치아키 돗토리대부속병원 간호사장.

■의료와 돌봄이 동떨어져 있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를 지역에서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점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김성단 팀장="각 의료원에 공공의료본부가 있지 않나. 현실적인 수가 보전이 필요하겠으나 공공의료본부들이 힘을 합쳐서 일본 지역의료기관에서 활발하게 실시 중인 방문진료 등을 확대 적용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곽덕진 주무관="아무곳에서나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니 의료법 차원에서의 검토를 통해 정책적 보조를 맞춰야 할 것 같다."

△유영주 사회복지사="일본 의료 체계 내에서 의료와 돌봄이 체계적으로 연계되고 있는 관점 자체를 도입해야 한다. 일본은 민간병원에서조차 환자들이 사회복지 관점에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김수경 연구원="일본은 지자체에서 주체적으로 정책을 수립해서 진행하는 반면 한국은 아직도 중앙집권적인 부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료돌봄통합지원시범사업 등을 시범사업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지역별로 성공사례를 발굴, 한국형 장기요양모델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조희숙 강원대병원 부원장이 한국과 일본의 의료 체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주민의 생활을 지지하는 의료 체계를 만들려면 무엇이 가장 시급한가.

△조희숙 부원장="지역사회 내에서 연속적인 치료와 돌봄이 가능해야 한다. 주민의 보건의료가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절실하게 여기는 지방정부의 책무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여러 매커니즘을 통해 의료 인력이 지방에 머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한국의 지역은 어떤가. 중앙의 하달식 사무를 보조하는 일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전국이 일괄적으로 움직이는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맞춤형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김창엽 교수="의료와 돌봄은 공간적인 근접성이 중요한 영역이다. 우리 지역의 현실에 대한 대안을 중앙정부의 관료나 공무원, 혹은 서울의 학자들이 알기는 어렵다. 정치적 이념으로도, 실질적인 가치로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현재 지역에서 불거지는 의료 문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시장 원리가 무너지면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공공이 직접 개입하는 방법 외에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다. 그런데 공공이 갑자기 각성하거나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결국 주민들로부터의 여론, 압력, 요구가 구조를 바꾸는 힘이다. 시민이 나서 스스로 지역의 필요에 응답하는 의료와 돌봄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 마침 특별자치도가 출범했으므로 새로운 상상과 담대한 시도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별 인터뷰/

만능열쇠는 없다. ‘하나하나 챙기는’ 지방정치 필요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일본의 보건의료체계는 한국과 '대동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근대 이후 특히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일본이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처럼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사회나 체계를 비교·분석하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 차이를 분석하는 일은 한국 공공병원의 현상과 장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2019, 김창엽 저, 한울, 본문은 496쪽 수록)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가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발간한 저서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에 수록한 문장이다. 김창엽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이사장,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의료정책 형성과 공공성 개선에 기여해 온 한국 보건의료 분야의 대표적인 권위자다.

코로나19 시기 크루즈선을 비롯한 단편적인 장면으로 보도된 일본의 의료체계는 정말 한국이 간단히 무시해도 되는 대상일까. 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일본이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서 고령화를 먼저 경험하며 겪는 실패 사례와 공공의료 체계 모두 한국이 '오답노트' 를 쓰듯이 검토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창엽 교수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체계인데, 건실한 지방의료원이나 인력 수급 등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관료제 역사가 훨씬 오래되기도 했지만 지방정부가 그런 문제들과 관련해 대단히 섬세한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잘 봐야 한다. 최근 한국의 지방의료원이 어렵다고 해서 '경영 혁신'같은 말이 나오는데 사실 그런 건 없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정책은 없다는 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성을 가지고 하나하나 매일 챙겨야 하고, 지역사회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일본 공무원들이 특별히 영민하거나 똑똑해서 건실한 공공의료체계가 갖춰진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제도와 구조다."

■고령화에 대비한 지역 의료체계 전략 차원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지자체의 책임성 위에 5년 뒤, 10년 뒤를 내다보는 보건의료구상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역보건의료계획과 공공보건의료계획을 내실화해야 한다. 한국은 여전히 현재가 급해 미래를 잘 대비하지 못한다. 의료원만 해도 전체 스펙트럼 안에서 생각해야 하고, 급성기 병원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까지 한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의료 문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앙의 본능은 수치다. 강원자치도 같은 경우에도 광역지방자치단체 평균 지표로 보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은 수준을 기록한다. 실상은 어디 그런가. 곳곳에 수치로는 파악되지 않는 주민의 애환과 고통이 있다. 중앙정부는 전국을 늘어놓고 수치로만 지역을 파악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역분권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출발해서 어떻게 해결할지 접근하는 것이 체제의 본능이다. 의료 인력 문제가 심각화되고 있는 강원자치도라면 가능한 해결책을 모두 늘어놓고 각각의 대책을 누가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한 번에 해결 가능한 문제는 없고 의료 인력 문제도 의과대학 입학정원만 늘린다고, 혹은 다른 정책 하나를 한다고 단숨에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설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한국 상황에서는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앞서 선도적인 정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

"주민의 고통과 애환이 있는데 어째서 지자체가 나설 수 없나? 중앙에 전달만 잘 해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지자체는 지방정부다. 고작 중앙정부에 전달 정도를 하기 위한 메신저가 아니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는 말 그대로 특별자치도다. 자치가 뭔가? 그린벨트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자치는 아닐 것이다. 주민들의 불편이 있는데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미뤄두는 것은 자치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중앙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지역 차원에서는 자원에 대한 슈퍼비전(감독)-모니터링-피드백을 계속 해야 한다."

명실상부한 '특별자치도' 시대, 건강자치 '책무성' 시급

2019년 강원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출범시킨 이후 줄곧 단장을 맡고 있는 조희숙 강원대병원 부원장은 강원자치도의 보건의료자원과 상황을 가장 자세히 알고 있는 전문가다. 2001년 강원대병원 부임 이후 강원자치도 보건·의료 현장 곳곳을 직접 돌며 건강돌봄 환경 개선을 위해 직접 힘써오기도 했다. 조 부원장은 강원자치도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인력, 조직, 예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희숙 부원장

■일본의 제도와 체계 중 강원자치도에 당장 적용 가능한 방안이 있을까.

"우리 도의 경우 의료인력 확보는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지속적으로 당면하는 문제다. 지속적인 문제가 될 부분인 만큼 단발성으로는 안 된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주관 부서, 담당 인력, 예산이 필요하다. 돗토리현청에는 의료인력확보실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도 조직 설치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할 주체가 마련돼야 한다. 만약 강원특별자치도청 내에 돗토리현청과 같은 의료인력확보실이 있었다면 지난번 속초의료원 응급의학과 의사 사직 사태 때도 미리 이를 비상상황으로 인지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시대를 시작하며 ‘건강특별자치도’ 가 돼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건강돌봄 영역에서 자치는 요원하다.

"주민 건강에 대한 책무성을 가지고 투자를 선도적으로 진행하는 곳은 사실상 서울특별시 정도에 불과하다. 지자체 스스로 건강자치가 가능하다는 자존감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 체계 차원에서는 어떤가.

"돗토리현의 경우 서부는 돗토리대가, 동부는 현립중앙병원이 선도하는 시스템이다. 도립병원을 대학병원에 버금가게 짓고 책임지게 한다는 것이 우리는 생각하기 힘든 수준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의대를 유치하고 대학병원을 지어야만 최고의 의료수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큰 차이점을 느꼈다."

■인력 시스템도 많이 달랐는데.

"지방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의료기술 수준이 대학병원 못지 않게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각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들로 하여금 경력 성장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다. 의사에게 지불하는 직접적인 금전적 동기 이외에 다른 동기를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돗토리현에는 의료인력의 경력 개발을 담당하는 인력이 현청과 대학병원에 있었다. 강원자치도 역시 의사 유치 뿐 아니라 근무하는 인력의 경력개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퇴원 환자들에 대한 관리와 돌봄 측면에서도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

"한국 의료시스템에서는 병원이 퇴원하는 환자까지 관리할 동기가 부족하다.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치료 중심적인 수가 보상체계 탓에 아직 수가로 제도화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의료사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지방의료원에 공공의료연계협력 사업 관련 예산을 지원, 2020년부터 퇴원환자 시범사업을 수행 중이다. 그러나 공공병원들의 관심이 적다. 치료 업무에 비해 우선순위를 낮게 두는 탓에 직원 투입도 저조하고 제공 사례 수도 매우 적다. 어찌보면 공공병원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아 중요한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지방 의료원들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강원특별자치도에서만이라도 국립대병원-5개 지방의료원-강원특별자치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힘을 모아 퇴원환자 관리사업을 확대해 좋은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다."

'건강, 지역책임을 묻다' 시리즈를 마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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