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의료격차 해소 못 하면 지역 소멸 막을 수 없다

도내 10명 중 1명, 30분 이내 응급실 못 가
수도권 대형 병원, 지역 의료 인프라 빨아들여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대 정원 늘려야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수 감소로 의료서비스 공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바람직한 의료서비스란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접근할 수 있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형평성 있게 공급되며, 양질의 진료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은 의료서비스의 시의성, 형평성, 품질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어 수도권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주민 10명 중 1명(12.3%)은 30분 이내 응급실이 없는 곳에 거주한다. 전국 인구 평균(4.1%)에 비해 4배나 높은 비율이다. 11.5%의 아동은 1시간을 이동해도 소아청소년과에 갈 수 없는 곳에 산다. 서울시내 어린이들은 겪지 않는 일이다. 수도권 인구는 2020년 전국 인구 비중의 과반(50.2%)을 차지한 뒤 2022년 50.5%까지 증가했다. 같은 시기 강원자치도 내 인구는 156만172명에서 155만6,970명까지 줄었다. 수도권 대형 병원은 지역 의료 인프라를 빨아들여 의료격차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없다. 농촌이나 섬 등 의료취약지역 최소화는 건강한 사회 실현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의료기관과 환자 간 시간적·물리적 차이를 완화해 의료취약지역을 해소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관행적 의료 서비스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문 의료 및 비대면 진료의 확대와 연계, 관련 의료기관·지자체 간 협력 등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고, 이 방식들이 실효성을 갖도록 경제적 인센티브 방안과 제도 정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조건은 의사 확충에 있다. 사회적 인프라 문제인 의사 확충 논의를 이해 당사자인 의사들만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즉, 의료 정원 정책은 환자와 소비자단체, 언론계 등 수요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선 다 그렇게 한다. 의사 부족은 국내외 통계로 입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3.7명)보다 한참 적다. 서울대 교수들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원을 받아 연구한 ‘의사인력의 중장기 수급체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부족은 2030년에 5만67명, 2050년에 10만7,548명으로 예측됐다. 그런데도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2006년 이후 18년째 그대로다. 의대 정원을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 5%씩 증원해 4,303명이 입학하게 되더라도 국민들의 의료 수요를 충족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의대 증원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각계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를 통해 결정해 나가야 한다. 전문의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최소 11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의대 정원 조정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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