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백현동 개발특혜·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26일 법원에 출석했다.
국가 의전 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가 영장심사를 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지팡이를 짚고 오전 10시3분께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한 이 대표는 '구속영장 심사를 받게 된 심경이 어떠냐',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어떻게 방어할 것이냐', '김인섭 씨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냐' 등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법정으로 가던 도중 중심을 잃고 휘청거려 주변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영장심사는 이날 오전 10시7분께부터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다. 당초 오전 10시부터 영장심사가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빗길 교통체증으로 이 대표의 도착이 늦어졌다.
검찰 측에서는 수사에 참여했던 김영남(사법연수원 34기)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 최재순(37기) 공주지청장을 포함해 10명가량이 참석했다.
이 대표 측에서는 고검장 출신 박균택(21기)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의 김종근(18기)·이승엽(27기) 변호사,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인 조상호(38기) 변호사 등 6명이 나왔다.
이 대표가 24일간 단식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긴급 상황을 대비해 법정에는 의료인력 1명이 배치됐다. 휠체어도 준비됐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강백신 부장검사)는 지난 18일 이 대표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위증교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2017년 2월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민간업자에게 각종 특혜를 몰아줘 1천356억원의 이익을 독차지하게 하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이 대표가 오랜 기간 유착해온 '선거 브로커'이자 '비선 실세'인 김인섭(구속기소) 씨를 위해 인허가권을 사용해 이익을 몰아주고, 그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을 성남시가 제거해 준 '권력형 지역토착비리 사건'이라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였던 2019∼2020년 김성태(구속기소)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방북 비용 등 총 800만 달러(약 100억원)를 북한에 대납하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룹 사업 확장을 노리던 김 전 회장을 '해결사'로 활용한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검찰은 주장한다.
이밖에 2018년 12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였던 김진성 씨에게 자신의 '검사 사칭 사건'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서 위증해달라고 요구한 혐의도 적용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혐의사실이 직접적인 증거 없이 검찰의 회유·압박에 의한 관련자 진술만을 바탕으로 구성된 허구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검찰과 이 대표 측은 혐의 소명 여부, 구속 필요성을 놓고 법리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이 대표 역시 직접 판사의 질문에 답변하며 구속영장을 기각해달라고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영장심사 결과는 이날 밤늦게 또는 다음 날 새벽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는 심사를 마친 뒤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게 된다. 심사 결과에 따라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갈리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권도 격랑으로 빠져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이 대표의 영장심사가 시작된 서울중앙지법 앞에서는 궂은 날씨에도 이 대표 지지단체와 구속을 촉구하는 보수단체 등이 나뉘어 집회를 열고 있다.
법원과 검찰 사이 법원로 남쪽엔 진보단체가, 북쪽엔 보수단체가 우의 차림으로 모여 "구속영장 기각하라",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 정반대 구호를 외치며 영장심사 소식을 기다렸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와 촛불연대 등 지지단체 회원 약 250명은 이날 이른 오전부터 법원로에 모여 오전 9시께 집회를 본격 시작했다. 일부 지지자는 전날 저녁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한 뒤 노숙했다.
이들은 차도와 인도 사이 바리케이드를 따라 줄지어 서서 "우리가 이재명이다. 이재명은 죄가 없다" 등이 적힌 팻말을 흔들고 연신 이 대표 이름을 연호했다.
영장심사 시각이 가까워지자 분위기는 더욱 격앙됐다. 마스크를 쓴 채 발을 동동 구르던 중년 여성은 "말도 안 돼"라며 연신 흐느꼈다.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눈물을 훔치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이 대표가 도착하자 집회용 트럭에 올라가 "영장전담 판사가 신중하게 발부 여부를 판단해줄 것을 간절하게 호소한다"고 말했다.
애국순찰팀과 신자유연대 등 반대단체 회원 100명가량은 법원로 북쪽 천막 아래 모여 '이재명 구속'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들은 '피의자 이재명이 몸통이다', '이재명 구속' 등이 적힌 현수막 옆에 서서 노랫가락에 맞춰 영장 발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반대집회 참가자가 지지단체를 향해 "개딸을 때려잡자"고 외치자 지지자들이 부부젤라와 나팔로 응수하는 등 신경전도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