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24 신년특집 신춘문예]시계를 넘어 - 단편소설 임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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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이 죽지 않을 만한 집을 찾으세요?... 진경이 혜진을 보고 물었다.
혜진은 어렵지 않다는 듯 진경에게 대답했다. 뭐, 돈이 되니까요.
...
진경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일자 눈썹이 다시 여덟팔(八)자 모양이 됐다.
여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어요. 진경이 고개를 넓게 돌려 좌우를 샅샅이 살폈다.
혈자리가 끊긴다고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 북향이라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무언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혜진이 놀라 바닥을 봤다.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은 까마귀가 시커먼 피를 죽죽 흘리고 있었다. 몸을 꿈틀거리는 게 완전히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마지막 숨을 버리고 싶은 것인지 지키고 싶은 것인지 까마귀는 날갯죽지를 파르르 떨었다.

―흉조네요.

혜진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까마귀 시체를 피해 길을 돌아 걸었지만 발끝에 피가 묻은 것 같았다.

―제 생각엔 길조예요.

진경이 발을 톡톡 털며 말했다. 혜진이 당황한 듯 진경을 바라봤다. 맨얼굴에 남은 여드름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사신은 같은 자리에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진경이 태블릿 PC를 켜서 보여줬다. 티벳 속담이라고 한다. 진경은 까마귀가 아파트의 제물 역할을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예산에 비해 나쁘지 않은 매물이었다. 연식이 있었지만 옛날 아파트답게 정남향에 구조가 넓게 빠져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최근에 교체됐고 지하 주차장도 나름 구색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혜진은 이 아파트를 살 수 없었다. 진경이 이유를 물었다.

―자살이에요 아까 그 까마귀.

깨끗하게 재도장을 마친 아파트 외관을 바라보며 혜진이 말했다. 추위 때문인지 진경의 여드름 자국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혜진은 부동산 단체 채팅방을 통해 진경을 만났다. 부동산 매물을 직접 현장에서 살펴보는 임장 스터디를 통해서다. 스터디를 구하며 혜진이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사람이 죽지 않을 만한 집 위주로 살펴본다는 것이었다. 모호하다는 이유로 누구도 선뜻 혜진에게 만남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때 대화를 걸어온 건 진경이었다. 입을 쩍 벌린 프로도. 진경의 성의 없는 대화명을 혜진은 그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터였다.

입을 쩍 벌린 프로도는 다른 익명의 대화 상대들과 달랐다. 대화방 사람들은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 동네를 두고 민도가 낮다고 혀를 찼다. 집값이 낮은 지역일수록 거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그들의 생활수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는 논리였다. 민도가 낮은 지역은 피해야 한다거나 이사를 할 때는 지역 민도를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 오갈 때 혜진은 쉽게 휩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쩍 벌린 프로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대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죠.

프로도는 입을 쩍 벌리고 말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타 지역 출신이고 모든 거주민이 부동산 소유자가 아닌데 그런 판단은 성급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실제로 평균 집값이 높은 지역에 전월세로 거주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지역에 자가로 거주하는 사람보다 소득이 높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져서 소득만으로 어떤 사람의 교양이나 생활수준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프로도는 참지 않아.

단체 채팅방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린 프로도를 향해 엄지를 척 내밀며 키읔을 연달아 타이핑했다. 일종의 조롱이 섞인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프로도는 참지 않는 일을 반복했다.

낡은 빌라를 조롱하는 썩빌이라는 단어가 사용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쩍 벌린 프로도는 그 단어를 사용한 사람을 향해 단체 채팅방에 긴 글을 남겼다. 보다 못한 익명의 대화자가 프로도에게 물었다.

프로도 님은 부동산 시세 차익을 염두에 두고 이 방에 들어온 건 아닌가요

프로도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저는 잘 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는 건데요.

프로도의 말에 익명의 대화자들은 잘 살 수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인지에 대해 묻곤 자기들끼리 긴 토론을 시작했다. 프로도는 입을 꾹 다물어버린 상태였다.

혜진은 프로도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라면 사람이 죽지 않을 만한 집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임장 스터디를 하기로 한 첫날 혜진은 가까운 우동 가게의 링크를 보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의 중간에 위치한 가게고 평점도 나쁘지 않았다. 프로도는 그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고 우동 가게와 조금 거리가 있는 돈가스 가게의 링크를 다시 보내왔다.

혜진은 그가 제안한 곳으로 향했다. 장소는 어디라도 상관이 없었다. 돈가스 가게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혹시 프로도

혜진이 다가가 물었다. 김진경이라는 이름표가 오른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프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무리 입을 쩍 벌려도 얼굴 하관의 절반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진경의 입은 아주 조그맸다.

―고등학생이 어떻게

혜진이 가게 문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진 않은 채 비스듬히 걸터앉으며 진경에게 물었다. 진경은 올해 스무 살이 되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지만 성인이라고 답했다. 혜진이 가게 한 켠에 걸린 달력을 곁눈으로 흘깃 봤다. 1월도 벌써 절반이 지나있었다.

―등기를 칠 수가 있나요

혜진이 다시 물었다. 진경은 유명 정치인들이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신생아를 건물주로 등재해 논란이 된 사건들을 상기시켜줬다. 단체 채팅방에 들어간 것도 임장에 나오게 된 것도 모두 부모님이 직접 나서 이뤄진 일이라고 한다. 원하면 통화도 시켜주겠다는 진경에게 혜진은 신분증만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가 스무 살이 맞다면 같이 공부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진경은 아직 코팅 광이 그대로 살아있는 깨끗한 주민등록증을 혜진에게 내밀었다. 아직 신분증을 보여주는 것이 어색한 일처럼 보였다. 혜진은 딱히 신분증의 진위를 파악할 만한 기술이 없었다. 애써 신분증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척하는 것으로 인증 절차를 마무리했다.

진경은 어릴 때부터 외할아버지와 풍수지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성공한 부동산 투자가고 지금은 노후 생활을 위해 외국에 나가 있다는 것이다. 평단가 1억이 넘는 동네에서 태어나 쭉 살았다는 진경의 얘기를 들으며 혜진은 그들만의 감각을 배워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우동을 주문했고 곧 준비한 음식이 나왔다. 혜진은 어색함을 풀어보려 대화를 건넸다.

―이럴 거면 제가 말한 집에서 봬도 됐는데.

혜진이 진경을 바라봤다. 진경은 입을 꾹 다문 프로도처럼 아무 답이 없었다.

―우동 말이에요.

혜진이 정성스레 찾은 링크를 떠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진경은 그 과정을 떠올리려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경은 곧 식탁에 손가락으로 조그맣게 가로획과 왼쪽으로 휘어진 세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개 같거든요.

진경이 말했다.

이 거리는 전반적으로 큰 대(大)자 형태를 띠는데 혜진이 제안한 우동 가게는 가로획의 우상단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즉 개 견(犬)자에 위치한 것이다. 반면 여기 돈가스 집은 좌변의 오른쪽에 밀착해 클 태(太)자를 완성한다고 한다. 처음 보는 사이기 때문에 개보다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데서 보고 싶었다는 게 진경의 설명이었다.

진경의 콧대가 시작하는 지점 미간의 한 가운데엔 큰 사마귀 점이 있었다. 혜진은 다듬지 않은 눈썹 사이로 이어진 솜털과 가운데 사마귀 점이 꼭 갓머리()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혜진은 가진 재산을 전부 끌어 모아 30평대의 신축 아파트를 매수할 생각이었다. 기존에 가진 빌라와 소형 평수 아파트 실거주 중인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것이다. 무리 없이 매수가 가능했던 그간의 매물들에선 소소하게 재미를 봤지만 피곤한 일이 너무 많았다.

세입자들은 툭하면 보일러가 고장 났다거나 가스렌지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일로 혜진에게 연락을 했다. 특히 낡은 빌라에 살던 강 할아버지의 연락은 너무도 잦은 편이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그의 전화에 시달릴 때면 혜진은 모든 걸 정리하고 혼자 도망가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다 네가 벌인 일이잖아.

지켜보던 상만이 말했다. 상만은 작은 출판사의 대표이자 혜진의 오랜 연인이었다. 상만은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그 상대는 당연히 혜진이라고 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같이 살 집은 알아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부동산에 매달리는 혜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내 몸 한 곳 누울 곳만 있으면 그만이야.

상만이 다시 말했다. 30년 동안 저렴한 월세로 제공이 가능하다는 공공 임대 주택 공고를 바라보면서였다.

―그런 데 민도가 얼마나 낮은 줄 알아

혜진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상만이 무슨 뜻인지 되물었다.

실수라 생각했지만 한번 나온 말을 물릴 수는 없었다. 결국 긴 말다툼이 이어졌다. 이후 두 사람은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사실상 이별의 수순을 밟는 중이었다.

혜진은 대단한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집 주인이 된 건 아니었다. 그저 원룸이 불편했고 전세금을 떼이는 게 불안했다. 저녁으로 먹은 생선 냄새 정도는 환기시킬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의 주거 시설에서 살고 싶었다. 혜진은 비싸지 않은 외곽의 아파트를 매수했고 그곳은 곧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아파트 곳곳에 안전진단을 준비한다는 현수막이 붙었고 여러 부동산에서 매도를 권유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혜진은 자연스럽게 갈아타기를 거듭하며 금세 목돈을 마련했다. 적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혜진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외에 투자한 낡은 다세대 주택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강 할아버지 사건이 터졌지만 좀 놀랐을 뿐이지 금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상만은 이런 혜진의 사고방식에도 낯설다는 표현을 했다.

혜진은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가진 돈으로 도심 한복판의 최고급 아파트엔 갈 수 없지만 인근 지역이라면 꽤 괜찮은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그곳이라면 험한 일을 겪을 필요도 없이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 가격으로 그곳에서 펼쳐질 삶을 확신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짐작해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그것이 혜진이 똘똘한 한 채 역할을 하는 아파트에 모든 것을 건 이유였다.

―왜 사람이 죽지 않을 만한 집을 찾으세요

우동 국물까지 시원하게 마신 진경이 혜진을 보고 물었다. 혜진은 어렵지 않다는 듯 진경에게 대답했다.

―뭐 돈이 되니까요.

진경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혜진을 바라봤다.

상만이 다시 연락을 해온 건 판권 문의 때문이었다. 그는 30년 전 절판된 소설 시계(視界)를 넘어를 복간하고 싶어 했다. 최근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있는데 캐스팅된 여자 배우가 끝내주게 멋있다는 것이 복간을 의뢰하는 이유라고 했다.

시계(視界)를 넘어는 90년대에 출간됐다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사라진 소설이다. 한밤중 침몰한 배의 선원을 구조하기 위해 수색활동을 벌이는 다이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원제는 Beyond the Limit였다. 한밤중 침몰한 배를 구조하려면 바다 속에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번역 제목은 그 부분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소설 속 다이버들은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렵게 시야를 확보해 수색에 성공했지만 배는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밤새 수색에 열중한 한 다이버는 서치 등의 경계를 넘어 발견한 무(無)의 세상을 믿지 못한 채 수색을 계속했다. 결국 그녀가 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혼자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기이하고 공허한 이 소설은 40년 만에 돌아온 노인과 바다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국내에선 큰 반응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묻혔다. 상만이 좋아하는 여자 배우는 마지막까지 수색을 계속한 다이버 역할인데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보니 얼굴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상만은 그 점도 좋다고 했다.

문제는 저작권자가 이 계약을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오래전에 죽었고 그의 딸이 재단을 꾸려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었다. 작가의 딸은 오래전 출간된 한국어판이 해적판이었고 인세 보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들어 계약을 거절했다. 혜진은 그동안 한국 출판시장이 얼마나 발전됐는지 설명하며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상만에게 전할 업데이트 사항은 없었다. 작가의 딸이 여전히 회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혜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만에게서 온 이메일 창을 닫았고 잠을 청했다. 그가 선물한 드림캐처가 침대 머리맡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얼마 후 혜진은 진경과 함께 드리밍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매수를 고민하고 있진 않지만 그 주변 아파트 가격을 선도하는 대장격으로 불리는 곳이라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터다. 바깥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혜진은 바람이 덜한 터널 쪽을 바라보며 진경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갈까요

터널은 공사 중이었지만 한쪽에 별도 보행로가 마련돼 있었다. 진경은 교복 위로 입은 코트를 양손으로 다잡았다. 혜진은 진경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모르고 앞으로 혼자 나아갔다. 뭔가 이상해 되돌아봤을 때 진경의 얼굴엔 다시 갓머리가 팽팽하게 조여져 있었다. 그것은 좌우로 흔들리기까지 했다.

―버스 타면 안 될까요

―버스요

혜진이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되물었다. 버스를 타면 공사 중인 터널을 지날 수 없어 우회로로 가야 했다. 터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혜진은 추위로 빨개진 진경의 볼을 봤다. 진경은 양손으로 볼을 감싸면서도 터널에 들어오지 않고 혜진에게 소리쳤다.

―여기 산이 외청룡이거든요.

진경이 불안하다는 듯 터널 위를 가리켰다. 터널은 외청룡 역할을 하는 산맥을 댕강 끊은 셈이었는데 그런 곳은 사고가 잦다는 게 진경의 설명이었다.

―죽지 않는 곳을 찾는다고 하셨잖아요.

진경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혜진은 하는 수 없이 터널에서 걸어 나와 칼바람을 뚫고 걸어서 드리밍 아파트로 향했다. 터널을 지날 때보다 20분이나 늦어진 일정이었다.

드리밍 아파트는 생각보다 더 허름했다. 주요 노선이 두 개나 지나는 지하철 역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입지 깡패로 불리는 아파트였다. 진경은 입구에 있는 가로수 앞으로 가더니 여기저기를 살폈다.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치곤 조경 관리가 잘된 축에 속했다.

―지기(地氣)는 나무가 닿는 높이만큼만 영향을 미치거든요.

진경이 말했다. 입구에 있는 나무가 너무 높은 점은 위험 요소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에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혜진은 이 아파트에서 얼마 전 가스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걸 진경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혜진이 나오기 전 아파트에 대해 검색을 해봤을 땐 나오지 않는 정보였다. 혜진 조차 동네 부동산에 들렀다 우연히 알게 된 소문이었다. 진경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땅의 기운에 맞게 나무를 쳐내든지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아니면 나무 기운이 빠져 나갈 불이 가까운 시설을 들이면 좋아요. 예를 들면 쓰레기 소각장 같은 거죠.

혜진은 뒤돌아 아파트 입구를 한번 더 올려봤다. 나무가 없으면 직사광선이 그대로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면 입구 가까이에 있는 동은 건물 부식이 더 빨리 이뤄질 것이다. 빠른 부식은 재건축 절차를 더욱 앞당긴다. 진경의 정수리 위로 재건축 조합 설립 추진위가 승인됐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진경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드리밍 아파트에 빈집이 있다는 얘기를 미리 들은 다음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한 집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현관은 흑색 포세린 타일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우드톤으로 배치돼 있었다. 유행이 지난 우드톤은 자칫 낡거나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집은 80년대에 지어진 중산층 아파트 특유의 차분함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현관 옆은 욕실이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테라조 타일을 바닥재로 하고 최근 유행하는 간접 조명을 사용했는데 은은해서 보기 좋았다. 거실과 안방 사이엔 간이 벽을 두어 사생활을 완벽히 보호했다.

옛날 아파트답게 안방과 거실이 단순하면서도 널찍하게 배치된 점이 눈에 띄었다. 요즘 아파트들처럼 별도 파우더룸이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한 공간을 크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 아파트는 한강을 마주보고 있었다. 중층이었지만 한강 조망엔 모자람이 없었다.

진경이 발코니로 나가 탁 트인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진이 그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경치 참 좋죠.

진경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일자 눈썹이 다시 여덟팔(八)자 모양이 됐다.

―여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어요.

진경이 고개를 넓게 돌려 좌우를 샅샅이 살폈다.

―아무리 봐도 없네요. 진경이 다시 말했다. 그녀는 조산(朝山)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 집의 주산 형태는 적절하지만 혈자리 가운데가 끊겨 있어 조산이나 안산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 혈자리가 끊긴다고 해서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집은 북향이라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북향은 귀신이 잘 붙는데 여기에 혈자리까지 약하면 집주인의 건강은 더욱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찾으시는 것과 대척점에 있는 집이에요.

바위 하나 없이 깨끗하게 미끄러지는 한강 뷰를 보며 진경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아파트에서 한강뷰를 내려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은 진경이 유일할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 나와 땀을 식히기 위해 혜진은 진경과 가까운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진경은 부순 쿠키와 아이스크림을 섞어 만든 프라푸치노를 먹고 싶다고 했다. 혜진은 자신의 커피와 그것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딱 보면 알 수 있어요?

혜진이 물었다.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을 찾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진경은 구체적인 내용을 듣지 않고도 의도를 파악하고 대답을 했다.

―이론일 뿐이에요.

진경은 자신에게 신기가 있거나 점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저 통계에 기반한 이론을 혜진에게 말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저는 꼭 좋은 집에 가야하거든요.

혜진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막연한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혜진은 더 이상 사람이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간절한 혜진의 표정을 지켜보던 진경이 문득 물었다.

―지금 사는 곳을 한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혜진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곳으로 이사만 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요청은 흔쾌히 들어줄 수 있었다.

그날 밤 혜진은 집에서 홀로 메일함을 열어 수신확인을 했다. 저작권자에게 보낸 메일은 ‘읽음’ 표시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혜진은 자신이 보낸 메일을 클릭하고 ‘전체 회신하기’ 버튼을 눌렀다. 상만이 미운 것과 별개로 답을 독촉하는 메일은 한번 더 보내야 했다.

저작권을 상속받은 딸의 이름은 에밀리였다. 소설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다이버의 이름과 같았다. ‘친애하는 에밀리 님께’를 시작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영문 인사를 적절히 배치해 적었다. 회신을 꼭 받고 싶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Beyond the Visuality’로 번역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출간 당시 제목에 대한 컨펌을 받지 못했는데 혹시 원제대로 번역하기를 원하면 따르겠다는 의도였다. 원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것을 알면 더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솔직하게 패를 모두 까고 저작권자의 결정을 기다리는 편이 옳을 것 같았다.

메일을 다 보낸 혜진은 곧 잠에 들었고 강 노인의 꿈을 꿨다. 강 노인이 꿈에 나오는 건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 노인은 꿈에서 편안하게 자기도 하고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분노하는 노인의 모습은 견딜만 했지만 아이처럼 울고 짜증을 낼 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노인은 체면 따윈 잊은 양 아이처럼 입을 쩍 벌리고 짐승처럼 울음소리를 냈다.

그날도 노인은 울고 있었다. 얼마나 북받쳤는지 얼굴이 다 발개질 정도였다. 벗겨진 노인의 머리 두피 색깔이 세 살배기 아이 정수리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건 시신이 발견될 때와 비슷했다. 부패한 시신에도 붉은 멍이 올라와 있었다. 시반이라고 했다. 울부짖는 노인의 시선은 명백하게 혜진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 앞에 떳떳하지 못한 어른이 된 것처럼 혜진은 내내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꿈에선 어떤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쩔쩔 매며 자기도 울고 싶은 얼굴을 하다 꿈에서 깼을 땐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며칠 후 진경이 집에 찾아왔다. 혜진은 이사를 앞두고 임시로 서울 외곽의 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밝은 표정의 진경이 문 앞에 서있었다. 진경의 손엔 펭귄 모양의 쿠키가 쥐어져 있었다.

―그냥 올 수가 없어서.

혜진은 그것을 받아 들고 거실로 진경을 안내했다.

한국 전쟁 직후부터 쭉 살았다는 가족의 집을 통째로 매수한 것이기 때문에 가정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족사진이 걸려 있던 자리와 어르신을 모시는 큰방, 아이들의 작은방이 옹기종기 모인 집이었다. 가스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기름보일러를 떼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는데 때문에 혜진은 집에서도 많은 옷을 껴입고 있었다. 옷을 벗으려는 진경에게 혜진은 가벼운 집업 점퍼를 건네 주었다. 그 또한 시골의 가정집 풍경 같았다.

―참 좋은 집이네요.

진경이 집업 점퍼를 챙겨 입으며 말했다. 혜진은 선물로 받은 대추차를 끓여 진경에게 내주었다.

-진경씨는 부동산을 왜 보러 다니는 거예요?

혜진은 진경이 매수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체 채팅방에 가입하고 오프라인으로 나와 직접 임장까지 다니는 이유는 분명 따로 있어보였다. 혜진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진경의 부모님은 부동산에 대한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진경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여러 건물과 땅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큰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진경은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는 서류상 이혼을 하고 멀쩡한 집을 두고도 뿔뿔이 이사를 다녔다. 아빠랑 사는 연도를 지나면 엄마가 찾아와 몇 년을 ‘아줌마’로 동거했다. 세법은 촘촘한 것 같으면서도 간절함으로 똘똘 뭉친 한국 중년 부부는 완전히 옭아매지 못했다.

모두가 그의 집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그가 부러운 건 아파트 로비에 걸린 삼족오상이었다. 발이 세 개 달린 삼족오(三足烏)는 음양오행의 상징이다. 음과 양이 수시로 엇갈리고 한 발 또는 두 발이 빠진 것처럼 생활하는 진경으로선 새까만 삼족오상을 빤히 올려다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노후 생활을 핑계로 외국으로 떠났을 때 진경은 화가 났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두 분이 해외 투자를 위해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 걸 모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한 술 더 떠 진경에게 실전 감각을 익히라고 권유했다. 진경은 단번에 거절했지만 부모님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고 했다.

―남극에 보내준다고 했거든요.

대추차와 함께 내놓은 펭귄 모양의 빵을 베어 물며 진경이 말했다. 혜진이 놀란 얼굴로 진경을 봤다. 남극을 한국인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인지 궁금했다.

진경은 아이패드를 꺼내 하트 표시를 한 캡처 이미지를 보여줬다. 남극 여행 패키지 상품이 있는데 가격이 대략 5천만 원 정도였다.

―왜 남극에 가려고 하세요?

혜진이 물었다. 진경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양을 모르고는 오행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남극은 모든 기운이 표출되는 극한의 양(陽)의 기운이 모인 곳이다. 진경은 만물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극지대 탐험은 필수로 생각한다고 했다. 기운이 발산되는 남극을 먼저 탐방한 후 기운이 모이는 북극도 탐방할 계획이라고 한다.

혜진은 한참 동안 남극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잊고 있던 순간이 빙하처럼 질서 없이 다가와 부딪혔다.

혜진이 그 전화를 받은 건 어느 호러 소설의 계약서를 검토하고 있을 때였다. 조건에 차이가 있어 담당 저작권사에 전화를 하려는 순간 휴대폰이 대뜸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구급대원이라고 했다. 혜진의 명의로 된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문을 강제로 열어야 하는데 혜진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혜진은 처음에 장난전화라고 생각하고 끊었지만 그 뒤로 계속 전화가 울렸다.

혜진은 심장이 뛰었다.

세입자로 살고 있는 강 할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은 지는 몇 주가 넘은 상태였다. 관리비를 내지 못한 그가 연락을 피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몰랐다. 혜진은 급하게 연차를 사용해 강 할아버지의 집 앞으로 갔다. 강제개방 준비를 마친 구급대원들이 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땟국물이 죽죽 흐르는 벽면 안쪽에선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풍겨왔다. 현관문을 열고 냄새의 정체를 확인하자고 할 용기가 단번에 나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은 쐐기를 박을 준비를 했다. 혜진이 여기까지 온 것을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대원들은 키퍼웨지를 사용해 현관문의 틈을 벌렸고 망치질을 하며 힘을 더했다. 웨지를 세 개쯤 박았을 때 현관문은 속수무책으로 완전히 나자빠졌다.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내부로 진입했다.

사체는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부패해 있었다. 혜진은 미처 가리지 못한 사체의 모습을 또렷이 보고 말았다. 강 할아버지가 처음 혜진을 찾아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사할 곳이 없다고 욕지거리를 퍼붓지 못했고 직업 훈련을 받아 만들었다는 ‘할배리카노’도 내오지 못했다. 아무 말과 흔적이 없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체가 너무 부패한 탓에 사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혜진은 간단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강 노인에게 협박이나 강요를 하지 않았는지 혜진에게 추궁했다. 재개발이 확정된 상태에서 강제 이주는 정해진 절차였기 때문에 노인을 협박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요구한 이주비용도 큰 돈이 아니었다. 특별한 통화 기록이나 메시지가 확인되지 않아 혜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한 형사가 끝까지 혜진을 의심해 경찰서 입구를 나설 때까지 혜진을 쫓아왔다.

―저도 월급 받아 생활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혜진이 뒤를 돌아보며 형사에게 말했다. 형사는 더 이상 혜진을 쫓아오지 않았다.

재개발 사업이 확정된 빌라를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강 할아버지가 이사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혜진은 그가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했다. 혜진은 이를 몇 번이고 되새긴 후에 이주 철거를 앞둔 빌라를 매도했다. 조금 더 버텨도 수익은 좋을 것 같았지만 더 이상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혜진이 좋은 집을 찾는 이유에 대해 말했을 때 진경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보(裨補)라는 개념이 있어요.

진경이 한 입 베어 문 펭귄 빵을 옮겨 구석으로 몰았다. 비보는 지형이 가진 결함을 인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산이 없는 자리에 인공 산을 만들고 하천이 시원찮으면 인공 천을 만드는 것이다.

진경이 옮긴 펭귄 빵은 어느새 그릇 안의 주산(主山)이 되어 남은 빵 조각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펭귄 빵을 많이 베어문 탓에 길이가 짧아져 모든 조각을 직접 다 안을 순 없지만 반경 안으로는 충분히 들어왔다.

―저는 기운으로도 비보를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진경의 외할아버지가 전해준 책에 의하면 쥐, 개, 황소, 두루미 형세를 가진 터에선 무조건적인 시혜만으로 기(氣)의 비보가 가능하다고 한다. 즉 베풂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경이 보기에 혜진의 집은 황소 형세를 가진 터에 속한다고 한다.

―기부를 하라는 말씀인가요?

혜진이 물었다. 진경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민도가 높은 좋은 집에 갈 수 있을까요?

혜진이 다시 묻자 진경은 입을 다문 프로도가 됐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해요.

한참 후에 진경이 말했다. 그것이 어떤 조화인지는 더 이상 설명해 주지 않았다.

에밀리에게서 답장이 왔을 때 진경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보겠다고 했다. 에밀리는 원서와 다른 한국어판 제목이 마음에 쏙 든다며 계약을 진행하자는 내용의 답을 줬다. 현관문을 나가기 전 진경은 사실 어린 시절 ‘노인과 바다’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열심히 고기만 잡은 노인인데 왜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을까요.

진경이 웃으며 물었다. 혜진은 무언가에 홀린 듯 진경을 보며 답했다.

―열심히 고기만 잡았기 때문일까요?

진경이 철제 현관문을 나서 좁은 골목 안으로 나아갔다. 어두운 골목길에 설치된 센서 가로등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켜지며 가는 길을 훤히 비춰 줬다. 모르는 길을 더듬으며 나아가는 진경의 뒷모습이 여느 때보다 씩씩하게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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