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노벨평화상 시린 에바디 "히잡은 이란 내 모든 억압의 상징…이란 이슬람 정권, 반드시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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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운동의 '대모'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 재조명
"본래 히잡 착용은 이슬람의 종교적 의무이거나 전통이 아니다"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 [사진=에바디 측 제공]

2003년 이란 여성운동의 '대모'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77)가 재조명 되고 있다.

에바디는 1979년 왕을 내쫓고 '이란 이슬람 정권'을 탄생시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혁명의 중심 인물이다.

그러나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로 혁명을 이끈 에바디에 돌아온 건 쓰디쓴 배신이었다.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에바디의 법복을 벗겼다.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이게 히잡으로 꽁꽁 싸매도록 강제했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남성을 유혹할 수 있다는 명목에서였다.

이란의 여성 인권 시계는 7세기로 되돌려졌다. 에바디는 침묵할 수 없었다. 다시 정권에 맞서 싸운 그는 2003년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그후 20년. 2023년 노벨평화상은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2)에게 돌아갔다. 무서운 데자뷔였다. 2022년 9월 이란의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간 뒤 의문사했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반정부 여론이 들고 일어섰다. 이란 전역에서 "여성, 생명, 자유"가 울려 퍼졌다.

정권의 탄압을 피해 2009년부터 영국에 머물고 있던 에바디는 이란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를 대표해 반정부 시위를 후방 지원해 왔다. 이번에는 '성차별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세속주의 정부'를 세우는 게 목표였다.

◇202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란의 여성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오른쪽)가 2007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여성 권리 회의에 참석해 시린 에바디의 발언을 듣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에바디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차라고 생각해 보세요. 종착역이 '정권 전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기차가 언제 도착할지 모를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혁명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는 "2022년 반정부 시위의 불씨를 댕긴 건 다름 아닌 '히잡'이다. 히잡은 이란 내 모든 억압의 상징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을 옭아매 온 모든 차별과, 차별을 조장하는 이슬람법령에 저항하고 있다. 이번 시위가 과거의 시위보다 광범위한 방향과 목적을 갖는 이유다. 히잡은 이슬람 신정 정권의 상징이고, 이 때문에 정권은 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히잡 쓰지 않을 자유'가 야기한 시위는 곧장 정권 전복을 향해 나아갔다. 신을 대리하는 성직자가 종신 집권하는 신정국가 이란에서 히잡은 이슬람 이데올로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란 이슬람 정권이 복종을 강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2003년 10월 14일 이란 테헤란 공항에서 시린 에바디(가운데)가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환영 인파와 취재진에 둘러싸여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본래 히잡 착용은 이슬람의 종교적 의무이거나 전통이 아니라고 에바디는 설명했다. 에바디는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히잡을 거부한 페미니스트다. 그는 줄곧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아닌 이란 이슬람 정권의 가부장성을 겨냥해 왔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성차별 정권"이라고 비판해 온 에바디는 "전통주의자 무슬림 여성들조차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이슬람에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 정권이 성차별적 적용을 하는 게 문제다. 히잡만 놓고 봐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란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으면 처벌받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등에서는 히잡을 안 썼다고 처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히잡 착용 여부는 같은 이슬람권 안에서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졌다. 이란에서도 히잡은 부침을 겪었다.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한 팔레비 왕조 아래에서는 히잡 착용이 법으로 금지된 적도 있다. 1960년대 후반 테헤란대 법대를 다녔던 에바디는 당시 단과대에 히잡을 쓴 여학생은 셋뿐이었는데 이들이 오히려 튀어 보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따라서 에바디의 히잡 거부 운동이 또다른 혁명으로 기록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9월 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히잡을 쓴 여성 옆을 지나가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한편 에바디는 지난해 평창군 일원에서 강원일보, 평창군 등과 함께 진행한 ‘제18회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 강원’에 참가해 사찰음식과 전통공연을 즐기며 한국의 전통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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