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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칼럼]따뜻한 가정의 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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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기 춘천지방법원 판사

5월은 1년 중 가장 날씨가 좋고 쾌적하며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화려한 계절의 여왕이다.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5월에는 유독 기념일도 많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세계 가정의 날, 부부의 날까지 가정과 밀접한 기념일이 가득하다. 근로자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처님 오신 날도 있어서 5월은 가정의 달로 불리기도 한다.

5월은 주머니 사정에 큰 문제가 생기는 달이기도 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원하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자녀에게 기꺼이 주머니를 연다.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따로 용돈을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여 밥 한번 먹자는 약속도 줄줄이 이어진다. 이래저래 힘들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가족들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면 호주머니 사정쯤이야 별 일이 아니다.

이처럼 소중한 5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괴롭고 쓸쓸한 시간이다. 필자는 올해 2월부터 춘천지방법원에서 각종 회생·파산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고금리에 고물가까지 겹치며 어려운 경제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경로로 듣고 있었는데, 올해 2월부터 각종 회생·파산 재판을 담당하면서 우리 법원에 접수되는 회생·파산사건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2월까지 개인회생사건 접수 건수는 22,16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월에는 전년 대비 30.4% 증가한 12,202건이 접수되어 월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개인회생제도’는 장래에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개인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적 절차이다. 채무자가 법원에서 인가받은 변제계획에 따라 소득에서 생계비를 공제한 가용소득을 3년에서부터 5년까지 기간 동안 채권자들에게 분할하여 변제하면, 남은 채무는 면책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파산과 달리 공무원, 교사, 의사 등 일정한 지위 혹은 자격을 유지하면서 진행할 수 있고, 채권자의 압류, 가압류 등 강제집행과 독촉을 중지·금지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을 수 있고, 은행 계좌 개설 및 체크카드 사용도 가능하다. 또한 배우자 및 자녀 등 가족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산제도에 비하여 유리한 점이 많다.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이 지속되면서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구제받으려는 채무자들이 늘고 있지만, 일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면책’이라는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 우선 채무액과 소득 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 채무액은 무담보 채무 10억 원이나, 담보부 채무 15억 원 이하여야 한다. 급여소득자나 자영업자 모두 신청할 수 있지만, 장래에도 지속해서 일정한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일을 하여야 하고, 최저 생계비를 공제하고 남은 가용소득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 부담하고 있는 채무가 신청 당시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 많아야 한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부터 계속된 경기 침체로 궁핍해진 자영업자부터 가족의 투병으로 발생한 막대한 병원비를 위하기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을 받은 회사원을 비롯하여 주식, 가상화폐 투자에서 발생한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채무자까지, 개인회생·파산을 신청하는 채무자들의 사연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채무자들의 사연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무거워지고는 한다. 어느 누구 하나 어렵지 않은 사람,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없다. 채무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상태에 맞는 법적 구제수단을 찾아 재기의 기회를 부여받아 가족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5월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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