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함대’라는 소설은 가까운 미래 미중 전쟁을 다루고 있다. 2015년 출간 이후 저자 P.W. Singer는 미국 군과 정부 기관들에게 많은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책에서 묘사된 중국의 기습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중국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배경에서 시작된다. 중국이 제조한 반도체는 미군의 항공기, 선박 등에 사용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이 반도체들이 작동하지 않도록 신호를 보내 미국의 현대전 전력의 대부분이 마비된다. 중국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아 가동이 가능한, 이미 퇴역한 유령함대를 가동한다.
오늘날 반도체는 국가 안보에 중요한 전략 자원이 되었으며, 의료, 자동차, 스마트 농업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환경 등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분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를 주력 산업으로 하는 반도체 강국이고, 지자체들도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집중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가깝고 용수와 전력이 풍부한 강원자치도가 반도체 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반도체 산업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업들이 필요하다. 기업 대표들이 마음은 있지만 종업원들이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따라오지 않으려 하고, 도내에서 채용할 수 있는 반도체 인력이 거의 없어 결국 이전을 포기한다고 한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이러한 어려움은 더 커진다.
도내에서 반도체 전문인력을 직접 양성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도는 2032년까지 반도체 인력 1만명을 양성할 계획을 선언했다. 반도체 교육센터 건립, 공유대학 출범, 특성화 고등학교 반도체과 신설 등이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는 정부가 지원하는 반도체특성화대학과 반도체공동연구소도 꼭 유치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연구 및 테스트 시설도 구축 중이다. 지난해 우리가 정부에 국비지원을 요구한 모든 사업이 국가예산에 반영됐다. 2024년부터 반도체 소모품 실증센터, 시스템반도체 신뢰성 검증 센터, 의료 AI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센터가 설치된다. 이러한 시설 근처로 기업들이 스스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혁신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돼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기업이 유리하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대학 내 창업기업을 위한 자금과 공간 지원, 기업과 대학의 기술 연계, 반도체 육성 펀드 조성 등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이 강원특별자치도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의료, 바이오, 모빌리티, 수소 등 강원특별자치도의 전략 산업에 활용될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들이 생겨날 것이다. 기업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들어오다 보면 대기업 반도체 공장을 유치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산업단지와 기반시설 공급 계획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더불어 반도체 산업의 빠른 성장과 수도권의 전력, 용수, 부지 부족 문제를 고려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원 반도체 산업은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반도체 산업은 이제 태어났다. 우리 지역의 바이오 산업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이 걸렸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것이 50년 전인 1974년이었다. 돌탑을 쌓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성과를 쌓아가다 보면, 반도체가 반드시 강원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