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보=수련병원들이 이탈 전공의들을 사직처리하고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했으나 마감일인 31일에도 전공의들은 '이미 수련 현장을 완전히 떠났다', '사직한 목표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등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를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의 수련병원 126곳은 오는 9월 하반기에 수련을 시작할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를 이날 오후 5시까지 모집한다.
모집 전공의는 총 7천645명으로, 유형별로는 인턴 2천525명, 1년차 레지던트 1천446명, 상급년차(2∼4년차) 레지던트 3천674명이다.
전공의들은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직한 뒤 병원을 떠났고 5개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이 신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동일 연차·과목 복귀'를 허용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특히 수련 특례는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는 전공의에게만 적용될 뿐 복귀를 위한 추가 대책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마감 당일까지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자 수는 극히 미미하다.
서울대병원은 하반기 모집에서 '사직 전공의'들의 자리를 비워둔 채 인턴 159명, 레지던트 32명 등 191명을 모집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714명(인턴 146명·레지던트 568명), 서울아산병원은 440명(인턴 131명·레지던트 309명), 삼성서울병원은 521명(인턴 123명·레지던트 398명)을 모집한다.
서울성모병원 등 산하 8개 수련병원을 둔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1천17명(인턴 218명·레지던트 799명)을 뽑는다.
이들은 지원자가 아예 없거나 '한 자릿수'에 그친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등은 지원자가 0명은 아니라면서도 현재까지 극소수에 불과하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전날 오후 5시 기준으로 정형외과에만 2명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지원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극소수여서 한 자릿수를 넘길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마감을 해봐야 알겠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썩 긍정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애초에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 무관심한 데다가,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본다.
복귀한 전공의들의 실명이 올라온 텔레그램방이 개설되면서 폐쇄적인 의사집단 내 '낙인찍기'에 대한 우려가 큰 데다 일부 의대 교수들이 하반기 복귀 전공의에 대한 지도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당장 병원들은 지원 현황을 공개하는 것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서울시내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당장 지원자 자체도 별로 없지만, 지원 현황을 공개하는 순간 누군지 색출하려고 할까 봐 기관에서도 조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대다수 전공의가 수련을 재개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주변 지인들 모두 수련 현장을 완전히 떠나서 '가을턴(하반기 전공의)' 관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며 "접수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7월 중순부터 '미용 의사'로 계약했다는 A씨는 "'한국에서 의사 못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주변을 보면 외국계 제약회사, 대기업 등 다양한 곳으로 직장을 많이 옮겼다"고 전했다.

서울의 다른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B씨도 "동료들과 가을턴에 대해 따로 대화한 적이 없다"며 "처음에 사직하고 나올 때의 목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니 가을턴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건 수련 특례에 대해서는 "뭐가 특례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수련 기간을 단축해 준다면 병동·중환자실에서 배우는 시간이 줄어들고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진다. 그 전공의들이 상급 연차가 되면 그 아래 연차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길 텐데, 의사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문의 시험을 조금 일찍 보는 것은 사직 전공의 입장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수련 기간이 조정된다면 나중에 전공의 모집에도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정부가 전문의 배출 숫자 맞추기에 급급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방 수련병원 전공의 C씨도 "가을턴은 사태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기존 전공의 수련 체계에 회의를 느끼고 일반의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사직 전공의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정부가) 의미 없는 호소만 하지 말고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대 정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타협해야 하며, 의료자본만을 대변하는 의료개혁특위 대신 다른 기구에서 수련체계와 법적처벌 부분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지 않으면서 의료현장이 시름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고 병원을 떠나면서 의료현장은 진료와 수술을 대거 축소하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하반기에도 전공의들이 충원되지 않으면서 또다시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수련병원들은 막판에 지원이 몰리는 만큼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전공의 없는 현 상태'가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앞으로 전공의 없이 어떻게 병원을 유지할지, 수련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며 "우선 당장은 전공의들을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해지자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개편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상급종합병원에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비율을 늘리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로 인한 공백을 메울 계획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상을 5∼15% 감축하는 등 중등증(중증과 경증 중간) 환자 비율을 줄이고, 전문의와 PA 간호사를 활용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체질 자체를 바꾼다는 전략이다.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환자까지 대거 진료하는 '박리다매'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본래의 목적에 맞게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둔다는 얘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과도한 전공의 의존을 줄일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과 같은 실효적이고 근본적인 개혁 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현장 의견을 반영해 9월 중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한 시범사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