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내년에도 만나요, 제발!”

김오미 문화교육부 기자

또 돈 얘기다. 분주해진 문화예술계를 따라 기자의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진 요즘, 취재를 할 때면 항상 묻게 된다. 적은 예산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예술은 배고파야 한다는 고루한 말이 떠오를 만큼 문화예술계의 살림살이는 팍팍해도 너무 팍팍하다.

원주옥상영화제의 상영작이 공개된 지난달. 한정된 여건으로 상영작 편수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영화제 작품선정위원회의 말에 기시감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 6월 열린 춘천영화제에서 들었던 말이다. 지원 예산 삭감으로 원주옥상영화제는 상영작을 지난해 23편에서 올해 19편으로 축소했다. 춘천영화제 역시 지난해 62편에서 올해는 52편으로 상영작을 줄여야 했다. 상영작이 줄어들지 않은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올해 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이 전액 삭감됐다.

문화예술계에 전방위적 지원 예산 삭감이 이어지고 있는 시대. 강원 독립영화 생태계는 존폐의 위협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어진 오랜 산업 침체에 지원 축소까지. 계속되는 악재에 도내 독립영화인을 발굴하고 지원해야 할 영화제들은 선뜻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돈 얘기로 한숨이 길어질 때쯤 독립영화인들은 말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최선을 다할 거라고. 그리고 살아남을 길을 모색할 거라고. 짐짓 비장한 각오 덕분인지 올해 강원 영화제들은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이달 초 열린 제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1만4,553명의 관객들이 방문하며 역대 최다 관객수를 달성했다. 기존 최대 관객수를 기록했던 지난해(8,142명)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많은 수다. 제11회 춘천영화제 역시 예산축소로 극장 상영 횟수를 지난해보다 5회 줄였지만, 회당 극장 관객 수는 56.2명으로, 지난해(28.7명) 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꼭 숫자가 아니어도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의 설레는 표정이, 작품을 향한 뜨거운 박수가 축제의 흥행을 짐작하게 했다.

악조건을 딛고 성공한 영화제들이 자랑스럽다가도 마음이 복잡하다. 지원 삭감에도 잘 버틴다며 덜 아픈 손가락 취급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공적 지원 없이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이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강릉국제영화제가 그랬고,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그랬듯이. 산업을 살리는 것은 결국 재원이다. 영화 산업이 언 땅처럼 척박해진 시대, 예산 삭감의 정당성을 묻고 축제의 흥행이 폄하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예산과 지원사업이 달라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당분간은 또 돈 얘기를 해야겠다.

돌이켜보면 영화제에는 늘 크고 작은 난관들이 따랐다. 세찬 폭우로 관객들의 옷이 흠뻑 젖기도 했고,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로 개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원 독립영화계는 꿋꿋이 나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는 29일 시작되는 원주옥상영화제에 어느 때 보다 환한 달빛이 비추기를 바라본다. 내년 춘천영화제의 봄이 더 따듯하기를, 영화가 뜨는 바다 정동진의 여름이 더 찬란하기를 기원한다.

어느 토크쇼의 마지막 인사말을 빌려 본다. “우리 내년에도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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