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제578돌 한글날이 있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했던 이유는 일반 백성들도 자신의 의사를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함에 있었다. 그런데 문자의 우수성과 자신의 의견을 글로 쉽게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필자는 법률가의 직역을 수행하면서 많은 법률의견서, 법원에 제출하는 준비서면, 판결문을 작성해 왔으나 여전히 좋은 법률문서(근래에는 판결문)를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법률가에게 글쓰기는 필수불가결한 일이자 평생의 숙제다. 말하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법적 의견을 펼치거나 법적 판단을 설명하는 것은 대부분 문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오늘 칼럼에서는 필자가 평소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법률가로서 좋은 글쓰기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먼저 결론에 이르는 논증이 치밀해야 한다. 법학입문 시간에 삼단논법을 배우게 된다. 삼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 및 결론으로 나뉜다. 대전제는 사건의 해결에 필요한 법규·법리를, 소전제는 법규, 법리가 적용되는 사실관계를, 결론은 소전제인 사실관계에 대전제인 법규·법리를 적용해 도출된 법적 결론을 의미한다. 이러한 삼단논법은 판사가 작성하는 판결문의 기본 체계로 작용하고, 변호사가 작성하는 준비서면이나 법률의견서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이처럼 법률가의 글은 여러 단계의 논리구조를 거쳐 결론 도출에 이르므로, 어느 단계의 논증이 부실하면 그 결론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필자도 변호사, 판사로 근무하면서 논증에 항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결론에 이르는 논거를 어느 정도의 깊이로 기술할 것인지, 사실관계상 서로 모순되는 논거는 없는지, 논리적 비약은 없는지 등 고민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민에 고민을 더해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결론을 도출했을 때에는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탄탄한 논증을 거친 서면을 읽으면 당사자가 주장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좋은 인상까지 받게 된다. 법률가의 글에서 치밀한 논증이 갖는 중요성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독자에 초점을 둔 글을 써야 한다. 법률가가 작성하는 글의 주된 목적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은 판단자인 판사를 설득해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판결문 또한 사건 당사자들에게 판결 결과와 그에 이르는 이유를 제시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기능이 있다. 아무리 유려한 문장을 갖춘 글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법률서면은 좋은 글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도 판결문을 작성하며 판결문을 읽을 당사자들이 그 내용을 수긍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패소한 당사자로서는 판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그러한 결론이 나온 이유에 수긍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필자가 처음 판례를 공부할 당시에는 판례를 읽는 것이 힘들었다. 판례가 긴 문장으로 구성돼 있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참고로 지금은 판례의 문장이 많이 간결해졌고, 법원에서도 예전부터 쉽고 간결한 판결서 작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치밀한 논증을 갖추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 되기 위하여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