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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한강 신드롬’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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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화제다. 5,000만 국민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수상은 작가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의 기쁨이다.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에 이어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중문화 부문은 이미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이뤘지만, 본격 예술 부문은 그에 견줘 다소 침체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가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날아든 쾌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가 여법한 선진국의 위상을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화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정부의 세심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후 일주일도 안 돼 우리나라에서 한강 작가의 책이 100만 권이 넘게 판매됐다고 한다. 국내 출판산업이 시작된 이후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열풍이 한때 이슈에 그쳐서는 문화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책을 가장 안 읽는 국가다. 조사에 의하면 성인 1인당 1년 독서량이 0.5권이 채 안 된다. 이 조사도 오래전에 한 거라 지금은 훨씬 못 미칠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해 출판 시장은 고사 직전이라는 말도 있다. 지나친 경쟁과 입시교육은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독서 부족을 이유로 꼽고 있다. 한때 학생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고교 교육 커리큘럼과 대학입시에 국내외 고전 작품을 읽고 문제를 푸는 방식을 도입했더니 몇백 페이지짜리 작품을 서너 장으로 압축 요약한 참고서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입시라는 블랙홀이 모든 걸 빨아들인 것이다.

책 속에서 인생과 세계를 통찰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문화 선진국의 길은 요원하다. 사회 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경쟁과 물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 각계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오대산 월정사는 절 입구에 ‘명상마을’을 조성하고 그곳에 조정래 문학관을 세웠다. 조정래 선생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이곳에는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조정래 선생과 함께 인생과 문학을 논하고 있다. 문학인들에게는 일종의 ‘문학 성지’ 역할도 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심사를 십수 년째 하면서 문학 지망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맡고 있다. 모두 제2, 제3의 한강을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는데 책을 뭐하러 읽냐고. 이는 최근의 정치권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껏 올라간 대한민국의 위상을 정치가 다 깎아내리고 있다’라고도 말한다. 맞는 얘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우리 정치권 소식이 외신에도 보도될 텐데, 한쪽 면에는 한강 작가 신드롬이, 또 다른 면에는 카오스 같은 우리 정치 이야기가 나란히 실린다면 이보다 더 망신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문학을 ‘진흙탕 속에서 피는 연꽃’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이런 진흙탕은 오물에 불과하다는 게 소승의 생각이다.

지난 23일은 상강(霜降)이었다. 기온이 낮아지고 서리가 내려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고 벌레들이 모두 땅에 숨는다는 절기다. 혹시 정치권이 뿌린 서리 때문에 오랜만에 날갯짓을 하는 우리 문화예술이 땅속 깊이 숨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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