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석탄공사(이하 석탄공사)는 1950년 5월4일 대한석탄공사법이 제정, 공표되며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석탄자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기에 6·25전쟁 기간이던 1950년 11월1일 국영 탄광인 공기업으로 탄생했다.
즉, 석탄공사는 특별법에 의해 ‘공사’ 형태로 설립된 최초의 공기업인 셈이다. 대한민국 석탄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석탄공사의 핵심인 장성광업소는 7월1일 자로 문을 닫았고 마지막 남은 도계광업소 역시 내년 7월1일로 문을 닫을 예정으로 조만간 석탄공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석탄공사 본사가 태백시 장성에 위치한 적도 있다. 정부는 서울 인구 분산 정책 및 석탄 증산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1974년 6월26일 석탄공사 본사를 장성으로 이전하고 서울 서대문 합동에 서울 사무소를 설치했다가 1년 4개월 후 1975년 10월25일 여의도로 이전했다. 이렇듯 태백 장성동은 석탄산업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태백시는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시행 이후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폐광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만 했다. 이제는 석탄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장성광업소마저 폐광해 많은 근로자 실직 등 또 다른 경제적 환경 변화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태백지역(당시 삼척군)은 석탄 생산지역이었다. 오로지 생산 주도형 개발로 나름 생산량 목표 달성에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그림자도 있다.
석탄산업에 종사하다 유명을 달리해 태백지역에 위패가 모셔진 분들이 1만6,000여명에 달한다. 연화산 자락에 위치한 산업전사위령탑에 4,118명, 진폐재해 순직자 위령각에 1만585명을 비롯해 태백산 만덕사, 장명사 등 태백지역 사찰에도 위패가 있다. 아울러 태백에만 2,500여명의 불치병 진폐산재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석탄을 먹으며 발전했고 그 석탄은 산업전사를 먹으며 성장했다.” 석탄산업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명확하고 확실하게 함축해 표현한 문구를 보지 못했다. 석탄산업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있어 큰 역할을 했고 이면에는 국민 생명과 건강에 상처를 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이처럼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부분, 과거 목표 생산량 달성을 위한 정책 시행으로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 진폐 등 석탄공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남겨둘 필요가 있다.
석탄공사 탄생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사실을 가감 없이 전시하는 가칭 ‘대한석탄공사 역사관’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단 역사관 설립의 타당성 확보를 위한 연구용역과 함께 예산 확보 등 행정적 절차를 진행하고 강원도와 태백시는 역사관 설립 후 비치할 각종 자료(장비를 비롯한 서류 등 석탄공사의 모든 자료)의 훼손, 분실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장성광업소는 폐광 전 이를 대비해 광산 기자재 일부를 보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이었던 석탄산업의 중심 역할을 해온 대한석탄공사 역사관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마지막 광부’. 이를 위해 늦었지만 대한석탄공사 역사관 건립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