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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상]단종의 유배길인 싸리치를 돌아 성황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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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수 전 원주MBC 보도부장

한필수 전 원주MBC 보도부장

싸리치옛길을 향해 달리는 원주트레킹버스의 차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참 곱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참가자들을 위해 원주역을 경유했던 버스는 나머지 원주시민들을 태우고는 막 원주문화원을 벗어난다. 대형버스는 만차였다.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동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예비 신청자였는데 취소자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가까스로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첫 일정은 싸리치옛길 트레킹이다. 원주시 신림면에서 영월군 주천면으로 향하는 88번 지방도왼쪽의 완만한 언덕이 싸리치옛길의 초입이다. 산세의 지형에 따라 굽어지고 꺾어지는 산길인데 유독 싸리나무가 많다 하여 싸리치라 불러왔으나 지금은 싸리나무보다는 소나무와 떡갈나무와 잣나무 등, 잡목이 뒤섞인 산촌의 숲길이다.

그 옛날, 단종이 유배를 떠나면서 이 길을 걸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다시 못 올 유배의 길을 떠난다. 신하 몇 명과 40여 군졸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복궁을 나서는 그는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원주의 흥호나루에서 내린다. 남한강을 따라 지금의 신림면 싸리치 고개를 넘게 되고 솔치를 지나 주천을 거쳐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 이르게 된다. 당시 단종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언젠가는 유배 생활을 접고 다시 이 길을 통해 환궁하리라 기대하면서 걸었지 싶다. 그러나 실제 단종은 영월 배일재에 이르러서 핏빛으로 번지고 있는 저녁 석양을 바라보며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듯, 크게 울면서 절을 올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두 번째 트레킹 코스는 고풍스럽고 평화스러운 용소막성당(강원유형문화재 제106호)이다. 오랫동안의 초가 성당을 1915년 시잘레 신부에 의해서 지금의 성당이 꾸며졌다. 풍수원성당과 원동 성당에 이어 도내에서는 세 번째로 건립된 고딕식 양식을 변형시킨 성당 건물이다.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관광문화해설사로부터 카톨릭 성지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맛나게 점심을 먹고 마지막 코스인 성황림(천연기념물93호)으로 간다. 초입부터 이어지는 숲은 그야말로 원시림이다. 복자기가 반기고 졸참나무가 마중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성황림을 신이 사는 숲이라 신성시 여겨 극진히 모셨다. 그래서 윗 성남과 아랫 성남에만 마을을 이뤄 지금의 성황림이 존재할 수 있었다. 면적만도 자그마치 1만6,000여평에 이른다. 당집은 오른쪽에 전나무가 호위하고 왼쪽으로는 엄나무가 듬직하게 서 있다. 500년을 넘긴 수령으로 성황림의 수목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임은 물론이다.

온대 낙엽활엽수림으로 복자기가 가장 많이 자생하고 있고 이밖에 느릅나무, 귀롱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말채나무, 물푸레나무 등 50여 종의 목본식물과 복수초, 꿩의바람, 윤관나물, 처녀치마, 등의 110여 종의 초본류가 자라고 있다. 음력 사월 초이렛날과 9월 초아흐렛날에 치악산 성황신을 모시는 성황제를 올린다. 성황림 너른 마당으로 푹신한 방석이 깔린다. 명상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진행되는 명상 프로그램이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바람 소리가 들리고 새소리도 속삭인다.

원주트레킹버스는 매 주말에 떠나는데 장소와 프로그램을 달리하여 운영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가는 계절이 아쉽다고 느끼시는가? 원주 트레킹버스를 타시라. 오는 겨울이 기다려지시는가? 그때도 원주 트레킹버스에 오르시라. 싸리치옛길로, 자작나무숲길로 그리고 한가터잣나무숲의 가르맛길 언저리로 하얀 눈이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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