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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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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폐교의 나무 복도를 밟는 순간, 30여년 전 국민학생 시절로 되돌아갔다. 담임 선생님이 “장학사님 오신다”고 하면 오후 청소 시간에 어김없이 기름 걸레(필자는 양초 세대는 아니다)로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기억 속 풍경에서 ‘권위주의’와 ‘권위’의 차이를 분명히 알게 된다. ▼1930년대 이후 개교했던 폐교에는 ‘OO헌장’도 참 많이 있다. 홍천 북방면 화계초교 성동분교에는 자연보호헌장탑이 있고, 전시 공간으로 활용 중인 주봉초교 와동분교에는 국민교육헌장탑, 어린이독서헌장 동상이 있다. “과거에 국가는 개인을 어떻게 대했나”란 질문의 답을 구하기에 손색이 없는 역사 자료들이다. 낡은 폐교는 ‘박물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폐교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작업이 홍천에서 진행 중이지만 규제로 첩첩산중이다. 북방면 화계초교 구만분교는 한옥과 문화재 보수의 대가인 고(故) 신영훈 선생이 숭례문 등의 보수 공사를 하며 남긴 수많은 기록물들이 보관돼 있다. 건축 분야 역사 자료일 뿐만 아니라 기록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서들이지만 지난 10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근거해 ‘10년간 매입 목적(교육용 시설)대로만 활용한다’는 특약 등기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콩 마을’인 구만리가 작지만 멋진 박물관을 가질 기회는 이런 이유로 10년이나 늦어졌다. ▼폐교 활용은 태생적으로 공공성을 벗어날 수 없다. 먼 옛날 주민들이 희사한 땅에 학교가 세워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천읍 삼마치1리 남산초교 삼창분교는 건물은 헐리고 2만㎡ 땅에 부지 희사자의 공덕비 2개만 남아 있다. 주민들은 마을 소득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지만 ‘교육용 공유재산’이란 법적 분류상 제약이 크다. 공덕비 속 부지 희사자들은 마을의 발전을 바라며 땅을 내놓았을 것이다. 지방 소멸 시대 마을의 발전은 곧 ‘사람이 돌아오는 마을’이다. 구심점 역할을 못 하는 폐교를 보면서 희사자들은 하늘에서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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