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본질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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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화 사회부 기자

지난해 하반기, '건강, 지역책임을 묻다' 기획보도를 준비할 때 일이다. 취재차 방문했던 일본에서, 주민의 삶과 가까이 붙어 건강돌봄에 종사하는 의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진행했던 여러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을 모두 동일한 문장으로 던졌다. 그 질문은 "의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였다. 당시는 몇 달 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 의료를 제공하는 일의 본질을 묻고 싶었다.

달력이 몇 장 넘어가 올 2월,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전개는 예상과 다르게 돌아갔다. 늘려야 한다, 말아야 한다, 설전만 오가는 가운데 아무도 의료란 무엇인가 묻지 않았다. 본질을 물어야 했을 자리에는 '환자들이 큰 병원만 찾으니 수도권 쏠림이 일어난다'는 지역 주민 탓하기, 그리고 '비대면 정밀진단 기술로 농촌 주민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들어섰다.

지금도 이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수가를 올린다, 수련 환경을 개선한다, 의사가 마주하는 법적인 부담을 줄인다. 정부가 그동안 꺼내왔던 진부한 해결책이 모양만 달라진 채 반복된다. "원점 재검토," 의사들이 보여온 모습 역시 조금의 변화도 없다.

이제는 모두 잊어버린 듯하지만 한때 '포스트 코로나'라는 단어가 있었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면, 사회는 달라지리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은 그 단어에 미래를 투영했다. 아프면 쉴 권리, 차별받지 않을 인권,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 자유. 위기 속에서도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자랐다. 감염병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도, 감염병에 대처하는 사회가 바뀌면 우리의 삶도 바뀌리라는 믿음이 있어 가능했다. 본질은 바이러스, 혹은 '종식'을 가져다준다는 최첨단 의료기술에 있지 않았다. 본질은 인간과 사회에 있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난 지금, '포스트 코로나'라는 단어가 희미해진 만큼 사회는 빠르게 후퇴했다.

그 후퇴를, 10개월째 '본질'을 빠뜨리고 달려가는 작금의 '의대 증원' 공론장에서도 발견한다. 지역 의료를 개선하겠다며 시작한 이 난리에는 지역도, 사람도 없다. 최첨단 과학적 의료를 제공한다 자평하는 이들의 막무가내식 집단 논리와, 공공의 책무를 참칭하는 이들의 알력다툼이 있을 뿐이다.

이대로 좋은가. 의료가 놓인 사회는 모르고 협소한 전문성만 아는 의사를 지금까지처럼, 혹은 더 많이 양성하면 그만인가.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방, 돗토리현에서 나고 자라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수련 중이던 젊은 여성 의사에게 "의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던 당시를 떠올린다. 답은 이랬다.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동반자." 그는 의무 복무 기간을 마쳐도 지역에 남아 포괄적 건강돌봄을 제공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 속에서 의사는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답은 고사하고 질문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시민이 질문하고 답할 자리에서 권력과 자본만 10개월째 시끄럽게 떠든다. 도대체 본질은 어디에 있나. 공백 너머에 주민의 삶이 있기에, 소음 속에서 끈질기게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본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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