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잠자는 새는 잡지 마라

이응철 수필가

춥고 긴긴 동지섣달 대한 절기를 오르는 겨울밤을 선조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지금이야 텔레비전을 비롯해 많은 매체들을 함께 즐길 수 있지만, 예전엔 등잔불을 달래가며 장화홍련전, 숙향전, 춘향전 같은 얘기책을 장마당에서 사서 사랑방에 둘러앉아 듣곤 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 마을 독서 모임처럼 감정이 많은 아낙은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쳐내며 분위기에 젖는다. 변사처럼 입체적으로 낭송하는 나그네는 다음 장(場)에 가서 또 다른 얘기책을 사 온다.

긴긴밤 삼삼오오 화투, 내기 바둑, 윷놀이 등을 하기도 했다. 무 구덩이에 꼬챙이로 무를 찍어 까서 먹기도 하고, 새벽이면 김유정 소설처럼 막국수를 눌러 먹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기제사를 익히 알고, 밤늦게 놀다가 몰려가 제삿방을 친다. 미리 알려 탕국이라도 많이 끓여 긴 밤 허기를 채워주기도 했다.

밤참으로 들기름 넣고 나물 넣어 쓱쓱 비벼 속을 달래고 메밀묵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겨울밤을 함께 보낸다. 그래도 동지섣달 기나긴 밤은 아무리 자고 나도 한밤중이다. 딸 부자 우리 어머니는 긴긴밤 삯바느질하시느라 인두를 화로에 꽂고 마지막 동정을 손질하셨으리. 화투라도 치다가 서너 명의 장정들은 출출하면 사다리를 들고 해묵은 초가집을 찾아 주인께 양해를 구하고 참새사냥을 한다.

손전등(플래시)은 필수였다. 초가집 처마를 비추어 잠자는 참새를 잡아 참새구이 맛을 보는 겨울밤이었다. 사다리를 놓고 아니면 무동을 해, 잠자는 참새 둥지에 불을 정면으로 비추면 눈부셔 꼼짝달싹을 못 할 때, 손을 넣어 움켜낸다. 군인용 손전등이 없으면 박카스 병에 천으로 심지를 박아 석유를 채워, 통조림 빈 통에 구멍을 뚫어 만들어 쓰기도 했다.

공자님은 일찍이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하지 말고, 주살 질은 하되 둥지에 깃들어 잠자는 새를 잡지 말라고 술이편에서 일렀다.

‘조이불망(釣而不網) 낚시질을 하되 그물로 잡지 않는다.’ ‘익불사숙(?不射宿) 주살로 사냥하되 잠자는 새는 잡지 않는다.’

낚시로 몇 마리 잡는 것은 좋지만 그물로 고기를 모두 잡는 것은 안 된다는 자연보호 정신을 일찍이 가르치셨다. 주살은 무엇일까 실을 매어 놓은 화살이다. 주살로 몇 마리 새를 잡는 것은 좋지만, 잠자는 새는 잡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공자님의 이 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너그럽게 인(仁)을 베푸는 가르침이다. 씨를 말려 다 잡는 것보다 여유롭게 베풀라는 뜻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여유로운 삶을 강조한 것이다. 요즘 가을 산에 다람쥐 먹이 도토리를 싹 쓸어 오는 것 또한 공자님은 안 된다고 하셨다.

언젠가 인근 중국 어선들이 저인망 어선으로 구멍도 촘촘한 그물로 바닥을 훑어 씨를 말린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잠자는 새의 모습을 그려보라. 얼마나 평화스러운가, 방어 하나 없이 잠자는 새를 잡는 비겁한 행동에 일침을 놓은 것이다. 서부영화의 총잡이를 보라. 절대 뒤에서 쏘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 절대 가난의 시절 허기를 채우려는 추억들이 자꾸 회자된다. 마음에 거리낌을 크게 느낀다. 민족 설 명절이 지나고 오늘이 입춘이다. 긴긴 겨울밤도 양의 계절로 치달으며 또 한 해 을사년에는 저마다의 소원들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인격의 힘은 권력과 지위보다 강하다’라는 말을 다시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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