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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입춘(立春)’

오세영의 시 ‘2월’에 나오는 것처럼 ‘벌써’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 2월이다. 길었던 설 연휴를 지나고 보니 벌써 입춘(3일)이다. 겨울이 제아무리 독하게 시샘을 부려도 봄은 온다. 계절을 막거나 거스를 순 없는 법이다. 이제 곧 산수유는 물론 영춘화의 노란 꽃망울이 터지고 양지바른 쪽엔 개나리와 진달래도 필 것이다. 그런 다음 벚꽃과 목련도 화려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조용하다. 들릴 듯 말 듯한다. 눈과 얼음이 건물 위에서, 인도에서 녹고 있다. 얇아지는 사람들의 옷자락 아래 세상 모든 생명이 회춘의 희열에 들떠 있다. 꽃으로, 바람으로, 강물로 봄의 기운이 퍼지고 있다.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고(故) 장영희 교수가 남긴 글 ‘생명의 봄’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다. 예부터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여겼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때면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고,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조선 후기 문인 유만공은 한 해의 명절과 풍속을 집대성한 ‘세시풍요’에 담은 시 ‘입춘’에서 “저잣거리에 붙은 국태민안이라는 글자/ 어느 마을 서생이 서툴게 쓴 것인지”라고 했다. ▼장바구니를 쳐다보며 한숨 내뱉는 주부, 수백 통의 이력서를 넣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 차가운 방 안에서 이불로만 한기를 이겨내야 했던 독거노인...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이번 봄은 새로운 각오로 맞아야 한다.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속의/ 벌레들마저 눈뜨게 하옵소서...’(박희진 시인, 새봄의 기도) 고통의 시간이 물러가고 희망이 샘처럼 솟는 봄이 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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