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최근 우리나라 상황이 그렇다. 12·3 비상계엄 이후 계엄 당사자들은 서로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명확한 증거와 증언이 나와도 막무가내다. 정치권과 지지자들도 양편으로 나뉘어 상대편을 거짓말에 현혹된 바보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불신의 나날이 벌써 3개월째다. 그 사이 해가 바뀌었고, 트럼프 2기는 출범과 동시에 전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진실과 거짓이 마구 뒤섞인 불신과 분열 속에 갇혀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금 사태를 악화시키는 주범은 누가 뭐래도 가짜뉴스다. 평범한 술자리에서부터 대규모 집회에 이르기까지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진실인 양 터져 나오고 있다. 유튜브와 소셜 네트워크는 가짜뉴스의 온상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그걸 굳게 믿는 사람이 늘어나는 지금 이 시기를 ‘탈진실 시대’라고 말한다. 2016년 미국 대선이 끝난 후 미국의 정치학자, 언론학자, 철학자, 심리학자들이 모여 트럼프의 ‘거짓말 대잔치’가 가능했던 당시 현상을 연구했는데, 결론은 ‘진실보다 자신의 믿음이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탈진실 시대’라고 명명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고 이게 결국 편견과 확증편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이를 부채질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분석하기를, 가짜뉴스의 배경으로 ‘불안과 분노’를 든다. 즉, 사회적 양극화가 가짜뉴스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짜뉴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경칩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한 불신과 대립에 빠져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남은 정치 일정이 그렇다. 가짜에 가짜를 더한 뉴스와 그로 인한 국론 분열이 걱정된다. 이럴 때, 차라리 침묵하는 게 어떨까?
인터넷과 사회 관계망 서비스의 발달로 인해 ‘입 가진 자들은 다 한마디씩 하는 시대’가 됐다. 그 말들이 오히려 진실을 가리고, 참 이치를 흐리고, 사람을 속이고, 그 결과 국민이 서로를 적대시하며 화해할 수 없는 긴 다리를 건너게 한다면 이것은 ‘문명의 죄악’이다.
부처님은 진실이 아니라면 침묵하라고 하셨다. 부처님은 ‘잡아함(雜阿含)’에서 “바른 이치를 깨닫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좋다”고 이르셨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는 “말의 가치는 진실이 있느냐 없느냐에 둔다. 왜냐하면, 진실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은 극도로 아끼고 쓸데없는 말은 삼간다”고 하셨다.
수행 중에 “악덕 비구를 만나거든 묵빈 대처하라”는 말이 있다. 소승이 거처하는 오대산에도 긴 겨울 끝에 봄기운이 흐르고 있다. 바야흐로 생명의 용솟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생명은 침묵 속에서 피어난다. 나 잘났다고 아우성치지도 않고, 너를 눌러야 내가 산다고 뻗대지도 않는다. 지금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백화(百花)의 침묵을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