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사시대 삶과 예술이 생생히 담긴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국보 중의 국보'로 불렸으나, 1965년 들어선 댐으로 인해 해마다 물에 잠기고 노출되는 일이 반복됐던 만큼 향후 보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한국의 두 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정식 명칭은 '반구천의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다.
암각화는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 즉 바위그림을 뜻한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한반도 선사 문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유산으로,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구성돼 있다.
세계유산 후보를 사전 심사하는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 5월 반구천 암각화에 대해 등재를 권고한 바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반구천의 암각화'는 선사시대부터 약 6천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며 "선사인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강조했다.
1971년 발견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흔히 '반구대 암각화'로 불린다.
울산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반구천 절벽에 있으며 높이 약 4.5m, 너비 8m(주 암면 기준)의 바위 면에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 사냥 그림 등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울산광역시 반구천암각화세계유산추진단이 3차원(3D) 스캔 도면, 실측 자료 등을 분석해 2023년 펴낸 도면 자료집에 따르면 총 312점의 그림이 확인된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마치 넓은 바다를 내려다본 듯한 시선을 바탕으로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 작살 맞은 고래, 잠수하는 고래를 생생히 표현했다. 암각화에 묘사된 고래만 해도 50마리 이상이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 앞서 1970년 먼저 존재가 알려졌다. 높이 약 2.7m, 너비 10m 바위 면을 따라 각종 도형과 글, 그림 등 620여 점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마름모, 원형 등의 추상적 문양이 인상적이다.
또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남아 있어 6세기 무렵 신라 사회상을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두 암각화는 옛사람들이 바위에 남긴 치열한 삶의 흔적이자 기록으로 가치가 크다.
국가유산청은 앞서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미적 표현과 문화의 변화를 집약한 유산"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리면서 '아픈 역사'를 끝낼지도 주목된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수십 년간 침수와 노출이 반복됐다.
반구대 지점보다 하류에 있는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데, 최근 10년 동안에도 연평균 40일 넘게 물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해 댐 수위 조절, 임시 제방 설치, 임시 물막이 설치 등 여러 안이 나왔으나 쉽사리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결국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이 지나서야 세계유산으로서 빛을 보게 됐다.
이에 세계유산위원회는 신규 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면서 "반구천세계암각화센터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유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개발 계획은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연댐 여수로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방안이 진행 중인 만큼, 향후 국가유산청과 울산시는 공사 상황을 유네스코와 공유하며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 목록에 새로 이름을 올리면서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이후 총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 중 문화유산은 15건, 자연유산은 2건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세계유산 등재까지 쉽지 않은 긴 여정이었다"며 "앞으로 반구천의 암각화를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가치를 지키고 잘 보존·활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족의 명산 금강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정식 명칭은 '금강산'(Mt. Kumgang - Diamond Mountain from the Sea)이다.
앞서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 5월 금강산에 대해 등재를 권고한 바 있다.
위원회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금강산이 독특한 지형과 경관, 불교의 역사와 전통, 순례 등이 얽혀 있는 문화적 경관으로서 가치가 크다고 봤다.
금강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여겨져 왔다.
높이 1천638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폭포와 연못이 어우러지며 태백산맥 북부, 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 있다.
위치에 따라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뉘며 다양한 식물 종이 서식해 생태·자연 자원의 보고(寶庫)로도 꼽힌다.
철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는 점도 유명하다.

금강산은 예부터 사대부와 문인들이 꼭 가고 싶어 한 여행지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금강산에 대해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죽기 전에 한번은 올라야 한다는 민간신앙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고 설명한다.
여러 문학 작품과 예술품에는 금강산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중 하나가 고려 후기 문인인 이곡(1298∼1351)이 1349년 금강산과 동해안 지방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인 '동유기'(東遊記)다.
조선시대 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19세에 금강산을 돌아본 뒤 남겼다고 하는 3천자 분량의 시 '풍악행'(楓岳行)도 잘 알려져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은 우뚝 솟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만폭동 계곡, 기암괴석 등의 절경을 한 폭의 그림(국보 '정선 필 금강전도')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코모스 등 자문기구는 금강산이 불교 유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봤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금강산사대찰전도'(金剛山四大刹全圖) 지도에는 금강산의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 등 주요 사찰이 묘사돼 있다.
북한 대표단은 금강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되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공기를 펼쳐 들었다.
북한 측 수석 대표는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하며 향후 금강산과 관련해 국제기구와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경관 고고학 전문가인 최종희 배재대 조경학과 교수는 "금강산은 과거 유럽 귀족들의 '그랜드 투어'처럼 사대부나 문인이 꼭 다녀와야 할 필수 코스였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금강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문인이나 예술가에) 영감을 주는 문화의 산실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유네스코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북한 측은 2021년 금강산의 등재 신청서를 냈으나, 당시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고 올해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등재로 북한의 세계유산은 3건으로 늘어났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2004년)과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 등 세계유산 2건과 인류무형문화유산 5건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