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객이 들고 온 하얀 봉투는 축복의 상징이자 결혼식장의 냉정한 계산서이기도 하다. A씨는 5만원을 봉투에 넣고 직장동료의 결혼식장에 앉았다. 줄 서서 받은 식권으로 뷔페 접시에 음식을 담는 순간, 그 5만원은 미묘한 무게를 갖는다. 최근 강원지역 결혼식장의 1인당 식대 평균은 5만5,000원. 결국 그 식사는 ‘축하’라는 명목으로도, ‘의리’라는 이름으로도 계산되지 않았다. 동료는 5만원을 받고도 5,000원을 더해 당신의 한 끼를 채워야 했다. ▼공자가 말한 예(禮)는 마음의 빛을 드러내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예는 숫자의 그림자로 뒤덮인다. 5만원의 축의금이 여전히 ‘기본선’으로 여겨지는 풍경은 오래된 관습 같지만 현실은 그 선이 버겁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강원지역 결혼서비스 평균 비용은 1,785만원. 비수도권 중 최고 수준이다. 식대, 대관료,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이 겹겹이 쌓인다. 특히 스튜디오 촬영 가격은 서울 강남보다 비쌌다. 결혼은 더 이상 의례가 아니라 고가 패키지 상품이 되었고, 그 무게는 신랑, 신부의 어깨뿐 아니라 하객의 봉투를 두드린다. ‘상부상조(相扶相助)’가 무색하다. ▼그렇다고 봉투 속 액수를 쉽게 바꿀 수 있는가. 인간관계라는 또 다른 계산법이 작동한다. 5만원은 여전히 심리적 기준선이고, 10만원은 체면을 세우는 안전선이다. 하지만 식대와 예식 비용은 그 선을 훌쩍 뛰어넘는다. 누군가의 기쁜 날이 누군가에게는 냉혹한 비용으로 다가온다. 결혼식장은 축하와 부담이 공존하는 독특한 무대다. 하객은 ‘가성비’를 계산하며 봉투를 봉하고, 신랑, 신부는 ‘손익’을 따지며 하객 명단을 점검한다. 예(禮)가 상품이 되는 순간 결혼은 본래의 빛을 잃는다. 그 속에서 웃는 얼굴은 많지만,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길은 더 많다. ▼우리는 정말 서로의 행복을 위해 이 예식을 유지하는가. 축의금은 애초에 ‘마음의 표시’였으나, 지금은 명세서가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의 결혼 풍속은 다시 물음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