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는 2017년 11월 17일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17년 안에 전국 일반계·직업계고 각각 30곳씩, 총 60곳을 정책 연구학교로 정하고, 교육과정 다양화 경험이 있는 일반고 40곳을 선도학교로 지정해 2018년부터 3년간 고교학점제를 시범 운영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때 고교학점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다음과 같다.첫째, 교실·교원 확충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다양한 선택과목이 개설되면서, 교실뿐만 아니라 해당 과목을 수업할 교사의 확보도 필요하다.둘째, 성취평가제 도입이 필요하다. 상대평가 제도하에서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면 과목별 유·불리 편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수강 인원이 적을수록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지고, 성적이 높은 학생이 몰리는 과목은 수강 신청을 기피하게 된다. 이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 쏠림을 유발하기 때문에, 성취평가제(내신 절대평가) 도입이 절실하다.셋째, 지역 간 격차 완화 노력이다. 고교학점제가 도농 격차를 키울 수 있다. 농산어촌 학교의 경우 교사나 교실이 부족해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에 한계가 있고, 이에 따라 지역 간 편차가 우려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순회교사제를 도입하거나 지역 내 교사 간 협업 강화, 온라인 교육과정 개설 등으로 교육 격차 완화를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출발한 고교학점제가 8년이 지난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며 교사들이 ‘패닉’에 빠지고, ‘고교학점제를 폐지하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정부가 무엇을 해왔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시작 후 4~5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첫째, ‘배우지도 않았는데 가르쳐라’라는 상황이다. 사범대에서 배우지 않았던 과목들이 대거 개설됐다. 일반선택 과목은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지만, 진로선택이나 융합선택 과목은 생소하다. 교사가 따로 공부하거나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렵고, 교사용 지도서 한 권만 주고 무조건 가르치라는 상황이다.둘째, 수요가 적은 사회나 과학 등의 과목은 선택과목조차 개설되지 않는다. 개설해야 하는 과목 수가 워낙 많다 보니, 1학년 때 공통사회나 공통과학만 개설되고, 과거 세분화된 과목이 하나로 합쳐져 전문성이 떨어진다. 심지어 학년당 10개 학급의 대형 학교에서도 도덕 교사가 전혀 관계없는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예도 있다고 한다.셋째, 지역 격차가 크다. 학년당 3~4학급밖에 없는 농어촌 학교는 더 심각하다. 수학 기초에 해당하는 진로선택 과목 ‘미적분Ⅱ’조차 개설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학교들은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으로 대체하는데, 이 경우 학습의 깊이가 얕아지고 대학에서 ‘시골 학교’라는 선입견을 가질 우려가 있다.넷째, 교사 업무 피로가 극심하고, 학생 반응은 시큰둥하다. 생소한 내용에 가르칠 과목은 늘어나 업무 피로도가 극심하다. 3과목 이상을 맡는 교사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며, 수업 준비에만 30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는 ‘기존 교사 재교육’이 거론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교사 재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교사 수가 많다보니 각 시·도 교육청은 해당 지역 대학과 협의해 빠른 시간 안에 연수를 마쳐야 한다. 또한, 사범대학도 준비가 부족하다. 사범대가 있는 대학은 고교학점제에 부합하는 신설과목을 정식 커리큘럼에 편성해 운영해야 한다.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이 말을 명심하고,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