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학교를 다시 사람의 공간으로

박현숙 한라대 교수

◇박현숙 한라대 교수

한국 교육은 더 이상 미세 조정으로 버틸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학생들은 경쟁 속에서 배움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고, 교사는 행정과 민원에 눌려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학부모는 아이의 하루가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불안해한다.

디지털·온라인·역량 중심으로 설계된 교육 4.0 (Education 4.0)의 창의·융합·체험 교육을 중요하게 제시했지만, 입시와 성과 중심 체제 속에서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보다는 선언적 구호에 머물렀다. 학교 밖에서는 AI와 디지털 학습 도구가 학습과 진로 탐색의 방식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는데, 학교 안의 시간은 여전히 과거의 구조와 속도 속에 묶여 있다.

이제는 수업 방법을 조금 바꾸고,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방식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것은 교육의 형식이 아니라,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목적과 관점 자체이다. 그 전환이 바로 교육 5.0 (Education 5.0)이다.

교육 5.0은 새로운 제도를 하나 더 얹는 개혁이 아니다. 그 본질은 ‘사람 중심의 교육 생태계 회복’이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학습 도구로 활용하되, 학생 한 사람의 정서·관계·성장 경험을 중심에 두고,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학교가 지역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함께 배우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기술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기술이 중심이 되는 교육 체제다.

최근 OECD 역시 미래 시민 역량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고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핀란드, 캐나다, 호주 등이 확산시키고 있는 ‘Well-being Education’ 역시 정서·관계·삶의 감각을 핵심에 둔다. 세계 교육의 흐름은 분명해지고 있다. 배움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교육의 목적은 ‘사람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이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교육 5.0은 이러한 국제적 변화 흐름을 한국과 강원도의 현실에 맞게 구현하려는 전환 모델이다.

이 전환은 특히 강원도에서 절실하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은 단순한 학교 통폐합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존립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심과 농산어촌 간 학습 기회와 교육 인프라의 격차는 강원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지역은 더 빠르게 비어가고, 아이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마을의 중심이자 주민을 연결하는 기반이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은 약해지고, 사람은 흩어진다.

바로 그렇기에 강원도는 교육 혁신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품은 지역이다. 양양의 바다는 몸과 자연을 통해 배우는 생태 교실이 될 수 있고, 정선의 숲은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배우는 공동체 교실이 될 수 있으며, 영월의 예술 공간은 삶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문화 교실이 될 수 있다. 강원도는 이미 아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교과서를 품고 있다.

교육 5.0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학생의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 교사가 다시 “나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학교, 지역이 학교를 함께 지켜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생태계에서 시작된다.

미래를 바꾸는 힘은 멀리 있지 않다. 교사 한 사람의 눈빛, 학생 한 사람의 경험, 학교와 지역이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 속에 있다. 학생의 삶을 지키고, 교사의 전문성을 회복하며, 지역의 미래를 함께 세우는 길. 그것이 교육 5.0이고, 강원도 교육이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

강원도가 먼저 시작하자. 우리가 바꾸면 대한민국 교육의 방향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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