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격랑의 강원, 선택의 시간은 이미 시작됐다

- 12·3 비상계엄의 그늘, 보수벨트 균열 일으켜
- 거물급 대결 구도 속, 강원도지사 선거 안갯속
- 정당 아닌 인물·구호 아닌 정책, 도민 삶 가른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향한 시계바늘이 ‘D-180’이라는 상징적 경계선을 넘어섰다. 내년 6월 3일 치러지는 이번 선거까지 이제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단순한 숫자의 감소가 아니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 단위 심판대이자, 지난해 헌정사를 뒤흔든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심의 격랑을 확인하는 ‘진실의 시간’이 코앞에 닥쳤음을 의미한다. 강원 정치권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고, 여야는 생사를 건 전면전에 돌입했다. 강원도의 정치 지형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불안정하다.

한때 ‘보수의 철옹성’이라 불렸던 강원은 탄핵 정국을 거치며 스윙보터(Swing Voter) 지역으로 변모했다. 2018년 민주당의 파란과 2022년 국민의힘의 탈환이라는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도민들은 이제 특정 정당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와 강릉권 보수의 핵이었던 권성동 의원 구속 사태는 동해안권 보수 벨트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틈타 국정 안정과 여당 프리미엄으로 판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지방 권력 사수를 통해 정권 견제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최대 승부처인 강원도지사 선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이다. 여당에서는 우상호 정무수석과 이광재 전 지사 등 중량감있는 인사들이 거론되며 판을 키우고 있고, 야당에서는 현직 김진태 지사가 도정 연속성을 강조하며 수성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단순히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나 유력 정치인들의 각축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실질적 권한 확보와 소멸 위기 극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할 ‘비전의 리더십’을 가려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 변수는 여전히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남긴 사회적 트라우마, 그리고 이에 따른 정권 심판론과 국정 안정론의 대결 구도는 선거 막판까지 표심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도내 기초의원 설문조사에서도 이번 사태가 선거의 최대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중앙발(發) 바람이 지역의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 선거’는 경계해야 한다. 바람에 휩쓸려 인물을 보지 못할 때, 그 피해는 오롯이 강원도의 낙후된 현실로 되돌아올 뿐이다. 180일의 벽은 이미 깨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기간이 아니라, 강원의 100년 미래를 결정할 ‘밀도 높은 기회’의 시간이다. 예비 후보자들은 공허한 진영 논리나 네거티브 공세 뒤에 숨지 말고, 강원도민의 삶을 바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당 공천 역시 당선 가능성이라는 공학적 잣대를 넘어, 도민의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과 역량을 갖춘 인물을 내세우는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 심판의 몫은 유권자에게 있다.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눈으로, 누가 진정으로 강원도의 척박한 현실을 타개하고 희망을 심을 적임자인지 가려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이 강원의 내일을,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쓴다는 엄중한 책임감을 잊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

강원일보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