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영동고속도로 기념비, 국가문화유산 예우를…

해발 850m 대관령 정상, 거센 바람을 맞으며 반세기 동안 동해를 굽어보던 거대한 비석이 신음하고 있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세워진 높이 10m의 ‘영동동해고속도로 준공기념비’ 이야기다. 갈라진 틈을 메우기 위해 덕지덕지 바른 시멘트 자국은 찢어진 옷을 기워 입은 듯 흉물스럽고, 주변 방책은 부러진 채 방치돼 있다. 한마디로 '누더기'가 됐다. 이는 단순한 시설물 관리 소홀의 문제를 넘어, 강원도의 운명을 바꾼 산업화 유산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빈곤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동고속도로는 강원도에 있어 단순한 도로 그 이상이다. ‘구름도 쉬어 간다’는 험준한 산악 지형을 뚫고 길을 낸 것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릴 만한 대역사(大役事)였다. 이 길이 열리면서 설악산과 동해안은 비로소 국민 관광지가 되었고, 강원도는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 산업화의 대동맥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젊은 건설 역군들이 피와 땀을 쏟았다. 기념비가 품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그 치열했던 도전과 극복의 역사다. 그런 기념비를 땜질식 처방으로 방치하는 것은 과거의 헌신에 대한 모독이자 직무유기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닦고 조이는 수준의 관리를 넘어, 기념비의 법적 지위를 격상해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마침 2025년은 영동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이 되는 해다. 현행 문화유산법상 건설·제작된 지 50년이 지난 근대문화유산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즉, 영동고속도로 기념비가 정식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도래한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훌륭한 선례도 있다. 1970년 준공된 경부고속도로의 ‘대전육교’는 노후화로 폐쇄되었으나, 근대 토목 기술의 가치와 상징성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국가등록문화유산(제783호)으로 등재됐다. 낡은 고속도로 다리도 문화재가 되는데, 강원도의 지형을 바꾸고 관광 산업의 기틀을 닦은 기념비가 문화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기념비가 위치한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고갯길은 최근 힐링과 추억의 공간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기념비의 문화재 지정은 이 일대를 역사문화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시멘트 반죽으로 균열을 가리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지만, 역사의 가치를 입증해 문화재로 만드는 것은 행정의 책임이다. 한국도로공사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와 평창군은 기념비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기념비가 100년 후에도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제 자리를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녹슨 비석을 닦아내고 그 위에 ‘국가유산’이라는 이름을 새겨넣는 일, 그것이 반세기 전 대관령을 넘으며 땀 흘렸던 이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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