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을 기반으로 사진 매체의 본질을 탐구해 온 심상만 사진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보인다. 자연에서 가장 단단한 사물인 ‘바위’를 통해 시간의 흔적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사진전 ‘풍화된 기억 (Weathered Memory)’ 이 오는 14일부터 28일까지 KT&G 상상마당 춘천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심상만이 40여 년 동안 동행한 렌즈의 시선이 어떻게 시간의 침식을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물과 빛, 그리고 얼음이라는 유동적이고 투명한 소재를 통해 추상적 세계를 탐험해 온 작가가 이번에는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바위의 거친 표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전시는 심상만 작가의 예술적 탐구가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향해 또 한 단계 깊어졌음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풍화된 기억’ 연작의 영감은 작가가 영국 브라이튼 인근의 ‘세븐시스터즈(Seven Sisters)’ 해안을 마주했을 때 시작됐다고 한다. 익숙한 한국의 바다와 달리, 그곳의 바람은 살갗에 스치는 방식부터 달랐고 바위들은 희고 회색빛으로 변색돼 있었다. 작가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위에서 파도와 바람, 빛과 시간이 끊임없이 깎고 씻어내는 반복의 과정을 목격했다.
심상만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침식은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각이었고, 기억이었고, 생존이었다”고 고백한다. 바람에 치이고 파도에 의해 깎여 나간 바위의 표면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가혹한 시간 속에서 바위가 버텨온 치열한 삶의 증거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정지된 대상 안에서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렬한 ‘생명성’을 발견하고, 바위 표면에 새겨진 ‘시간의 문법’과 자연의 순환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것은 “부재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조용한 풍경에 대한 시적 연대기”인 것이다.
전시는 그의 새로운 작업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판타지아(1985)’로 시작해 ‘결 – 바람에 얹혀서(2005)’, ‘내 안의 바다(2016)’, ‘연엽(2017)’, ‘잔상(Ghosting·2018)’ 그리고 ‘판타즘(PHANTASM·2024)’에 이르기까지 물과 빛, 그리고 존재를 탐구해 온 심상만의 오랜 여정이 응축된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기억’이라는 비물질적인 개념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고민이 구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람객들은 풍화된 바위의 주름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시간의 무게와 생명의 숭고함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