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목 좋은 거리마다 오늘도 덕지덕지 붙은 ‘현수막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거철을 앞두고 정당의 구호와 정치인의 이름이 적힌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이 거리 미관을 점령했다. 정치인들이 지역 내에서 상시적으로 내거는 명절 인사나 예산 확보 등의 정책 홍보 현수막은 여전히 한국 정치의 낮은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포스터와 현수막은 단순히 시각적 불편함을 넘어, ‘무지한’ 국민을 가르치려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계몽시대의 유산이다.
과거 소통 수단이 제한적이던 시절, 국민에게 무언가를 알리고 보여주기 위해 현수막은 유용한 도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과 종이신문도 영향력을 잃어가고 SNS와 유튜브가 일상화된 오늘날, 현수막은 정보 제공 기능보다는 불쾌한 시각물로 전락했다.
현수막은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외 연수나 기관 방문 시 현수막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관행 또한 예산 집행의 ‘증거물’을 남겨야 한다는 전시 행정과 불신의 문화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서구 선진국 거리에서는 현수막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 학자들이 한국의 현수막 문화를 신기한 구경거리로 취급하며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어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치 현수막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완성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형식적 제도는 서구 수준에 도달했으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보통 시민은 여전히 주변부에 머문다. 대신 과장된 목소리가 ‘바람’을 일으켜 정치를 좌우하고, 지역감정은 여전히 핵심 변수로 작동한다. 간결한 구호로 이런 감정을 부추기고 싶은 정치인들의 마음이 현수막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과열 상태에서 벗어나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민주주의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정치 현수막은 그 거품의 핵심이다. 법적 기준이 있다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시성 경쟁 속에 여러 정당의 현수막이 겹쳐 걸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남들도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소모적 경쟁은 결국 비용 낭비와 쓰레기 배출, 시민의 시야권 침해라는 사회적 비용만 발생시킨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정치적 목적의 현수막을 강하게 규제하고, 정당 예산이나 개인 비용을 불문하고 사용을 전면 제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예산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과열된 정치의 온도를 낮추고 이성적인 공론장을 회복하는 문제다.
나아가 사적 광고 현수막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보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노출되는 현수막은 시민의 권익을 해치는 구시대적 방식이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화려한 제도의 추가가 아니라, 낡고 불필요한 관행을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현수막의 종말은 한국 민주정치가 ‘보여주기’에서 ‘내실’로 나아가는 작지만 상징적인 한 걸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