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남항진 해변은 커피로 유명해진 안목 해변과 인접해 있으나 타지 사람들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군사용으로만 사용하는 비행장을 끼고 있어 한 방향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남항진 해변을 거닐 때면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성지’를 거니는 듯한 환상에 빠지곤 합니다.
이러한 환상이 생겨난 것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숱한 시문에 등장하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한송정(寒松亭)과 한송사(寒松寺)가 바로 이곳 남항진 일대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신사임당은 저 유명한 시 「사친(思親)」에서 “산첩첩 내 고향 천리언마는/ 자나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이은상 번역)이라 노래했습니다. 고향 강릉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이 시에서 신사임당은 강릉의 명소로 한송정과 경포대를 꼽고 있습니다. 강릉을 고향으로 삼았던 허균도 『학산초담』에서 “강릉부에서 구경할 만한 곳으로는 경포대가 으뜸이요, 한송정이 다음간다.”라고 쓴 바 있으니 그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한송정과 인접해 있었던 한송사는 문수당, 문수사 등의 이름으로 불렸던 사찰로, 여말선초에 강릉을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 때 이곡은 이곳을 방문하고 쓴 기행문 「동유기」에서 “문수당을 관람하였는데,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두 석상이 여기 땅속에서 위로 솟아 나왔다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석상이 바로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있는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과, 오죽헌 내 강릉시립박물관에 있는 같은 이름의 보살상(보물 제81호)으로 추정됩니다. 백색 대리석으로 조각된 이 보살상들은 재료의 특성이 잘 살아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걸작으로 탄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국립춘천박물관 소장의 보살상은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오죽헌 시립박물관의 보살상은 머리와 오른팔 부분이 훼손된 채 전해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립춘천박물관의 보살상이 함께 좌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죽헌 시립박물관 보살상의 훼손된 부분을 충분히 상상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국립춘천박물관 보살상에서 번져 나오는 ‘불멸의 미소’를 오죽헌 시립박물관 보살상도 분명히 공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국립춘천박물관의 보살상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한일협정 당시의 ‘문화재 협정’에 따라 1966년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귀국 즉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죽헌 시립박물관의 보살상은 193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가 해방 후 우리나라 보물 제81호로 변경 지정되었습니다. 두 보살상이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국립춘천박물관은 저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젊은 날 강원일보 기자로 재직할 때 정부의 국립춘천박물관 건립 계획을 가장 먼저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대문짝만하게 1면 톱을 장식했습니다. 그만큼 국립박물관 유치는 강원도민의 소망이자 자존심이었습니다. 국보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원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국립춘천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졌습니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한 유일한 국보이자 얼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배치가 많이 바뀌었지만, 초기에는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과 ‘영월 창령사지 나한상’이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들과 불멸의 미소를 띤 보살상이 같은 공간에 있는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장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에서 조선까지 오랫동안 강릉의 대표 명소였던 한송정과 한송사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 언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잃어버린 성지’를 상상하면서 남항진 해변을 거닐다 보면, 어느덧 저 멀리서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의 미소가 보름달처럼 환하게 떠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