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의 테헤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1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아랍국가들에게 대(對)이란 전쟁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 협상 타결을 재차 압박하면서 이런 '황금기회'를 날려버리면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걸프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국이 전쟁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요청하는 데 꽤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보다 앞서가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알기론 대통령이 가진 아이디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언급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이란 위협 제거로 안보상 이익을 보게 되는 아랍지역 국가들이 비용 부담에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레빗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자세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관련 발언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백악관 내부적으로 아랍 국가의 이란 전쟁 비용 분담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랍국가 입장에서는 사전에 충분한 논의 없이 대이란 군사작전을 시작한 미국에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이란 핵 위협 제거와 세력 약화가 아랍국에 중요한 사안인 것은 맞지만 아랍에미리트(UAE)를 필두로 아랍 여러 국가들이 이란 공격의 피해를 본 상황에서 비용 분담 논의의 전개 향방이 주목된다.
레빗 대변인은 또 이란과의 협상이 이어지고 있고 잘 되고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나오는 언급은 물론 비공개적으로 오가는 것과 많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격 유예에 따른 협상은) 이란에 한 세대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라며"만약 이란이 이 황금 기회를 거부한다면 이란이 심각한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모든 선택지와 함께 군이 대기중"이라고 덧붙였다.
레빗 대변인은 이란이 비공개 대화에서 몇몇 조항에 동의했다는 주장도 했다. 미국은 이란측에 15개항으로 이뤄진 종전안은 전달한 바 있다.
그는 당초 제시된 4∼6주의 전쟁 기간에는 변동이 없다고 했다. 4월 6일까지 이란 발전소 등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유예하고 협상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맞춰 어떤 식으로든 6주가 되는 4월 중순 안에 전쟁이 끝날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레빗 대변인은 미국과 이란 간 직·간접적 협상에 따라 며칠 내로 호르무즈 해협에 유조선 20척이 추가로 지나갈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와 관련,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면 미국 측의 호위를 통해서건 다국적 호위를 통해서건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탈환해 항행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 발전소와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겠다며 27일까지로 시한을 제시했다가 내달 6일까지로 다시 열흘 연장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상대로 한 '궤멸적 타격'을 경고한 것은 자신이 제시한 '시한'(4월 6일)을 일주일 앞두고 압박 강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과의 합의가 조기에 도출되지 않을 경우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유정, 석유수출 통로인 하르그 섬, 그리고 담수화 시설을 "폭파하고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는 전력과 식수를 끊고, 정권의 돈줄인 석유 생산·수출 시설을 부수겠다는 것으로,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는 경고다.
지난 21일 처음으로 '48시간' 시한을 제시하면서 지목했던 공격 대상은 발전소였는데 이번에는 공격 대상을 거의 모든 치명적인 민간 시설로 확대했다. 실제 공격을 감행할 경우 외교적·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고강도 압박용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현재 중재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진 종전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하겠다는 목적이 담겼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란에) 15가지를 요구했고, 우리는 몇가지 다른 것들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듯하다.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 속에도 상대측과 "진지한 논의"를 통해 "큰 진전"을 이뤘다며 "아마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자평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이유로든 곧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란이 사실상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이 즉시 상업용으로 개방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경고한 초토화 공격을 감행하겠다고도 으름장을 놨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사항 중 최우선 순위인 핵물질 포기,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인 통항이 남은 일주일 안에 이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관건은 이란의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 또는 타협점을 모색하거나, 치명적 타격을 받을 리스크를 안은 채 강경한 군사대응 노선을 고수하는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에서 주목되는 또 한가지 대목은 일방적인 철군, 즉 종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초토화 작전을 수행한 뒤 '이란 체류'를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란에 아직 지상군을 파병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란 체류'를 끝낸다는 말은 지난달 28일 시작한 대이란 공습을 매듭짓는다는 취지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이란과의 전쟁 기간을 짧게는 4주, 길게는 6주로 잡았다고 공표한 바 있다. 전쟁은 이미 4주를 지나 5주차에 접어들었다. 전쟁을 더 끌고 가기에는 정치적·군사적·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르그 섬을 비롯한 페르시아만 주요 도서와 이란 핵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까지 약 7천명의 지상군을 배치한 상태지만, 막상 상당한 미군 희생 리스크를 감수한 채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으로서도 부담이 크다.
결국 최종 시한까지 합의가 불발됐다고 판단할 경우 대규모 공습으로 자신이 지목한 시설들을 파괴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준 뒤 대이란 작전 승리를 선언하고 작전을 종료할 수 있음을 이번에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이란의 정권이 사실상 교체됐다고 주장하는 점도, '파괴' 외에 아무런 소득 없이 전쟁을 끝냈다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에 대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개전 이후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정권과 군 수뇌부를 잇따라 제거한 사실과 최고지도자 지위를 세습한 아들 모즈타바도 사실상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정권 교체의 근거로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우리는 정권교체를 이뤘다"며 현재의 정권을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불렀고, 이날도 "새롭고 더 합리적인 정권"으로 표현했다.
물론 초토화 작전을 끝낸 뒤 미군이 대이란 작전을 종료한다고 해서 전쟁이 즉시 종료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스라엘 및 걸프국들과 이란이 공격을 주고받거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장기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이 이어질 수 있다. 미군이 공세를 중단하면 이란 측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행사하며 중동 상황의 주도권을 틀어쥘 수 있고, 그 경우 더 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언사가 지상군 투입을 위한 시간 벌기 또는 연막 작전이라는 관측도 이란 안팎에서 제기된다. 지난달 미·이스라엘군의 전격적인 기습이 있기 전에도 양측은 핵 협상을 벌이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